우리의 생활 주변에는 가짜가 넘쳐난다. 돈깨나 나가는 것은 진짜를 모방하여 짝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역설적으로는 가짜가 많은 것이야말로 진짜 물건은 고가의 좋은 것일 것이다. 구별이 쉽지 않아서 때로는 진짜를 포기할 때도 있다.
이런 것은 사람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성서에서는 `양의 탈을 쓴`사람이라고 한다. 양을 몰 때, 양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양가죽으로 된 옷을 입은 목동을 말한다.
선거철이 되면 선량이 돼 시민에게 봉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들이나 시민들에 앞장서서 일하려는 자는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싶다고 한다. 그들의 이력서는 황홀하다. 혹시 속마음에는 자기 출세욕심만 있을지라도 외견으로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겉보기에는 훤한 사람이다. 일하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일 수행 방향이나 능력 정도의 차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이 끝날 때쯤에는 시민 위주냐 자기위주냐에 따라, 결과가 근본 마음의 차이만큼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마치 논에서 벼와 피는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구분해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근본의 틀림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구하지 못하고, 엉겅퀴에서 딸기를 따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말을 잘한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인다. 이런 지도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자기를 따르게 만든다. 그들은 수 억원의 돈을 자기는 손도 대지 못했고, 비서가 받았다고 한다. 때로는 대가성이 없었다고도 한다. 한 쪽에선 확실히 줬다고 하고, 다른 쪽은 죽어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악인이 따로 없다. 이런 자가 악인에 속한다.
악인은 위선을 부린다. 그들은 자기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가면을 쓰고 있다. 이런 부류의 악인들은 선출직에 출마하는 등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정의를 위해서 일했다고 한다. 그들은 좋은 가면을 늘 쓰고 다니기에, 드디어는 그 가면이 자기 얼굴인 양 착각에 빠지고, 그것을 당연히 자기 얼굴로 행세를 한다. 선한 척, 의로운 척, 진실한 척, 유식한 척, 그래서 끝내는 완전한 악인으로 추락해 버린다. 이 길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넓은 길이다.
죄인은 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죄인은 자기의 잘못을 알고, 사찰이나 교당에서 적나라하게 자기를 보이면서 후회, 통탄하는 자를 말한다. 죄인끼리는 서로 위로하나, 악인은 다른 악인을 매우 싫어한다. 그 이유는 다른 악인이 자기의 악한 행위를 비춰 보여 주는 거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 살기가 힘들고, 어렵고, 혼란스러운 것은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고, 악인이 많아서 그렇다. 악인은 죄인임을 모르기에, 고통을 모르는 정의의 투사인양 행사한다. 죄인은 이와 다르다. 자기의 죄에 대해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회개하고, 교당에서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어리광 부리듯 신에게 매달린다. 죄인은 잘못된 점을 꼬집어 내기가 쉽다. 분노하여 추궁하면 당장 죄를 자백한다. 죄인은 감옥 안에 많다.
사회에서는 악을 퇴치하려는 지도자가 더 악한 경우를 많이 본다. 그는 썩은 사회를 바로 잡으려고 한단다. 사람들은 이런 자를 추종한다. 그들은 백성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악인은 죄인과 같이 낙인이 찍혀진 사람이 아니다. 교양도 있고 좋은 학벌에, 지적인 인상을 가졌다. 위장의 천재로서 양의 옷을 입고 있다. 이런 사람은 감옥 밖, 사회에 많이 있다. 모두는 쉽고 넓은 길로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수양과 연마로 인격을 가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