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출연자 한 명은 특별했다. 전형적인 한민족 핏줄이건만 선천적으로 파란눈으로 태어나 놀림 받은 기억이 있는 젊은 엄마가 나왔다. 그녀의 어린 딸도 파란 눈동자를 가졌는데 벌써부터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의 불쾌한 경험이 있는 출연자로서는 커가는 딸이 받을 상처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모녀가 뿜어내는 파란 눈빛은 신비한 인형의 그것처럼 이국적이고 매력적이었지만 특이하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예의 출연자보다 더한 신체적 `다름`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희기만 했던 그녀의 눈동자는 파란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 선천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서 생기는 알비노 유전 현상 때문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파란눈의 모녀와 마찬가지로 그건 질병도 전염병도 아니었다. 다만 남과 조금 다르게 태어난 것뿐이었다. 그 때문에 짓궂은 애들에게 수모를 당해야만 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나와 다름에 대한 관용의 시선은 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다수가, 특수하고 특별한 소수를 홀대해도 괜찮은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서양인이 파란눈을 가졌으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동양인이 파란눈으로 태어났으면 무시의 대상이어도 좋을 근거는 없다. 다수라는 강압의 눈이 소수라는 연약한 눈을 제압할 이유 역시 없다. 그 무모한 눈빛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깨쳐주는 것은 우리 어른이 할 일이다. 모르고 해악을 끼치는 어린 영혼의 모든 잘못은 우리 기성의 책임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