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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 우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3-12 00:03 게재일 2013-03-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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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시인의 시집 `사슴공원에서`의 표제시 덕에 `녹명(鳴)`을 알게 되었다. 기실 나를 울린 것은 `사슴 울음 소리`가 아니라 `누가 벗어놓은 신발을 돌려 놓았다`라는 구절이었다. 돌고 도는 계절엔 경계가 불분명하고, 나는 먼 곳에 있고, 내 앞의 당신은 침엽수처럼 무표정 하다. 그래도 언젠가 본 책 속의 사슴 공원처럼 우리는 사랑을 꿈꾸고 단비를 기원한다.

내게 시는 읽는 게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다. 시 속의 저 신발을 돌려놓은 이 누구였을까를 생각하는 충만한 엔돌핀의 시간만큼 독자로서 미소 짓게 된다. 내가 벗어 놓은 신발을 누군가 돌려놓았든,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을 내가 돌려놓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상황을 포착하는 시인의 다사로운 눈썰미가 있었기에 사슴의 울음으로까지 확장되는 시구를 건질 수 있었으리라.

시경(詩經)의 소아(小雅)에 녹명 부분 시가 나온다. 다북쑥 뜯던 사슴은 우우하고 제 기쁜 울음으로 먹이 있는 곳을 알린다. 거문고 켜고 생황을 부니, 광주리 받들어 주변 사람들도 몰린다. 나를 좋아해 (사슴은) 바른 도리를 일러준다. -이런 내용의 시이다. 사슴은 다른 짐승들과 달리 먹이를 찾으면 기쁜 울음으로 주변에 알린단다. 어진 임금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런 시가 탄생되었으리라.

사슴 울음소리를 내는 건 쉽고도 어렵다. 완고한 타자의 세계관 앞에서 뻗어가는 나의 실존이 울어주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더구나 상황은 고정된 자아와 변화무쌍의 타자로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사슴의 기쁜 울음은 온 우주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울음이 되기 십상이다. 강한 사자는 제외하더라도 여린 토끼나 비슷한 염소에게까지 울음소리를 할애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 배타성의 한계를 일찍이 목도했기에 시인은 `사랑이 식기 전에, 밥이 식기 전에` 서둘러 사슴 울음소리 들으러 가야 한다고 다독이는지도 모르겠다. 약자라면 누구나 들어설 수 있는 풀밭의 나날을 꿈꾸는 것 그것이 착한 시인들의 사명이런가.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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