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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라는 푼크툼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3-08 02:20 게재일 2013-03-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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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에 가면 책보다 더 유의미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친구가 말한 핵심 장면을 마음으로 찍어 들여다보면 짧은 생각 하나가 정리되곤 한다. 인화된 사진은 전원주택 집들이 장면이다. 근경으로 집이 보이고, 사진 중간의 야외 식탁엔 노란 앞치마를 두른 섬세한 안주인이 삼겹살을 굽는 중이다. 분주해진 안주인을 도와 누군가는 밥을 푸고, 다른 누군가는 낮 술잔을 챙긴다. 왼쪽 원경이 텃밭인데, 그곳에서 젊은 누군가는 상추를 따고 있다.

안주인의 바쁜 손길과 달리 눈길은 텃밭 상추 따는 친구에게 가있다. 순진한 도회지 얼굴의 그녀는 상추의 연한 윗대궁만 톡톡 딴다. 말리기엔 너무 멀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도 없어 안주인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애매한 표정만 짓는다. 상추 따는 친구는 밑대궁부터 따는 것이 상추나 주인 심지어 자신마저 배려하는 것임을 모르는 순진한 표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안주인의 저 표정에도 악의 없음이 증명되니까.

이 사진에서 `전원주택에서의 친구들과의 다정한 점심 한때`만 읽는다면 일반적 보편적 시각인, `스투디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추 윗대궁을 따는 아무 생각 없는 친구와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안주인의 섬세한 표정을 읽게 된다면 이는 `푼크툼`이 된다.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푼크툼은 하나의 `세부요소`이자 `찌름`이니까.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만의 생생한 영감의 세계로 이탈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다. 친구들과의 단란한 점심 식사 장면의 일반성을 떠올리는 것보다, 연한 꽃대궁을 무심히 꺾어버리는 예견치 못한 친구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모티프가 된다. 눈치 못 챈 다른 친구들이 맘껏 웃으며 소주잔을 기울일 때 여린 상추에 눈길을 주는 안주인을 읽어내는 것 역시 푼크툼이다. 푼크툼은 고상하고 도덕적인 것을 벗어나 엉뚱하며, 은밀한 개별성을 지닌다. 너무나 비의지적인`찌름`인 푼크툼의 구체적 사례들에서 예술은 출발하는 게 아닐까.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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