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되는 소설. 의도하는 바 없기에 변명할 필요 없고, 바라는 바 없기에 훈수 둘 일 없는 소설. 쓰는 작가는 단지 그것을 끝낼 궁리를 하고, 읽는 독자는 묵묵히 마지막 장을 덮기만을 바라는 그런 소설. 질문하지 않았으므로 답할 필요 없고, 설사 질문 하더라도 판단유보로서 독자의 권리를 곱씹을 수 있는 소설. 이런 소설은 나를 매혹시킨다.`롤리타`가 내겐 그랬다.
롤리타는 소설을 빙자한 산문시이고, 험버트를 가장한 작가 나보코프의 심미적 고백록이다. 흠잡을 데 없는 산문적 글쓰기는 시종일관 균질한 농도로 독자를 사로잡는데, 소설은 메시지가 아니라 문장으로 승부한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시대를 앞선 작가로서 부도덕한 작가 의식에 대한 세간의 혐의를 의식했을까. 전통적 액자 기법으로 그 혐의를 피해가려 한 것은 독자로서 썩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설계도가 필요 없을 만큼 첫 글이 다음 글을 몰고 가는 글 장단이 독자를 압도하는데 소심한 부채감, 이를테면 작품성에 대한 일말의 회의를 가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작가 입장에서는 소설은 시작하면 끝내야 할 심리적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정신적 노동의 범주에 넣을 만한 그 작업을 통해 작가는 심연의 경계에서 폭발하는 무질서한 심상을 무한 발설하는 욕구에 휩싸인다. 그것이 단순한 욕구로 끝나지 않고 예술성을 확보하려면 독자보다 심리적·심미적 우위에 있어야 한다. 거기엔 독자를 가르치려는 위선도 자신을 과장하려는 위악도 필요 없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작가의식만 있으면 된다. 도덕과 교훈과 감동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입체적 인생의 질문지, 소설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롤리타는 썩 매혹적인 소설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