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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번의 옆모습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2-27 00:23 게재일 2013-02-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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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연예인들의 얼굴은 똑 같다. 갸름한 달걀형 라인에 이마는 봉긋하고 콧날은 오뚝하며 눈은 앞트임을 곁들인 쌍꺼풀이 대세이다. 눈썰미 젬병인 나 같은 이는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 갑갑하기만 하다. 아이돌의 노래나 춤을 보면서 활력을 얻고 싶은데,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 되니 재미가 반감 될 수밖에.

개인적으로 나는 달걀형 얼굴에 대한 환상이 있다. 이목구비가 아무리 뚜렷해도 턱 선이 곱지 않으면 내 기준의 미인 목록에서 탈락시키곤 했다. 이마 좁고, 광대뼈 나오고, 턱 선이 발달한, 전형적인 몽골리안 계통의 내 얼굴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그런 생각이 자리했는지도 모른다. 한데 무개성한 브이자 얼굴이 유령처럼 뒤덮는 세상을 보면서 조금 달라졌다.

인물사진의 대가 유섭 카쉬(Yousuf Karsh)가 찍은 오드리 헵번의 옆모습을 오래 들여다 본 적이 있다. 흠잡을 수 없는 오드리 헵번이지만 예의 내 기준에 의하면 그녀가 미인일 리 없었다. 사각 턱에 가까운 얼굴형 때문이었다. 그녀가 현재 우리 연예계에 진출했다면 턱 선 교정은 피할 수 없는 강요가 되었을 것이다. 한데 들여다볼수록 무한 애정이 생긴다. 발랄한 듯 기품 서린 오드리 헵번의 숨은 `강단`이 그녀의 턱 선에서 보이는 것이다. 진주 품은 조가비처럼 어금니 꽉 깨문 외유내강이 그녀의 턱 선에서 읽히는 것이다.

배우로 이룬 꿈을 유니세프 친선대사라는 사회적 가치로 환원한 그 행보가 각진 턱에서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명성을 개인적 목표보다는 사회적 이타심과 결합하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건전한 결정이 아무리 즉흥적이라도 해도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전제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헵번식 사유의 출처를 나로서는 그녀의 강인한 턱 선에서 찾고 있었던 것. 그녀가 세상을 뜬 지 이십 년이나 지났지만 우아하고 결단력 있는 그녀의 옆모습은 누군가의 내면을 자극하는 강단 있는 매개물이 되어 줄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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