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을 오른쪽으로 90도 각도로 돌려놓고, 짝지는 옛사람들처럼 위에서 아래로 글씨를 썼다. 오른손잡이처럼 노트를 놓고 쓰면 왼손바닥에 연필 자국이 새까맣게 묻을 뿐만 아니라 노트 글씨에도 얼룩이 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지휘봉으로 짝지의 꺾인 노트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얌마, 오른손으로 바꿔 써!`하곤 한마디씩 하곤 했다. 훈계나 시비를 위한 것이 아닌 애정과 관심을 향한 것이었다. 짝지는 그 상황을 즐길 만큼 마음이 여유가 있었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춘기가 오던 시절이었기에 남자선생님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한데 남선생님들의 관심은 왼손으로 글씨 쓰는 짝지에게만 가 있었다. 나도 짝지처럼 되고 싶었다. 짝지 따라 노트를 비스듬히 놓은 채 왼손 글씨를 써보기까지 했다. 왼손 글 솜씨는 늘지 않았고, 여전히 남선생님들의 관심은 짝지에게 가 있었다.
왼손잡이가 못 된 나는 아직도 왼손잡이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다. 해서 아들과 딸이 왼손잡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은근히 서운하기까지 했다. 한때의 경험 한 자락이 평생 자기 인생관에 녹아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금도 새로운 왼손잡이를 만나면 `글씨도 왼손으로 써요?` 라고 묻는 버릇이 있다. 상대의 대답이 아니라고 하면 괜히 실망하게 된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가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건 예쁘고 상냥한데다 영민했기 때문이지 결코 왼손잡이어서만이 아니다. 그래도 왼손잡이에 대한 긍정적인 로망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기만 하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