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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나갔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2-15 00:01 게재일 2013-02-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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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서 시집 두어 권과 그 외 몇 권의 책을 골랐다. 시와 소설을 공부하는 이에게 보내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내게 책을 선물한데 대해서 릴레이로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책 선물을 즐기는 편이다. 책장에 넘쳐 방치되느니 친구들과 나눠서 좋은 게 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책방에 꽂혀 있다 뿐, 내 책은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다. 급하게 읽어야 할 책을 찾지 못해 다시 주문하거나 빌릴 때도 있다.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할 바에는 집안으로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어찌된 건지 내 깜냥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책만은 다달이 사들인다. 책꽂이는 한정되어 있으니 주변과 책을 나누면 책방도 깔끔해지고 마음도 달달해지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박스 포장을 하기 전 책을 한 번씩 쓰다듬어 본다. 시집 한 권에 손길이 오래 머문다. 처음 펼치던 순간 헐거웠던 심장이 조여지는 듯한 그 느낌이 다시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나갔는지 마당이 어지러웠다 -싸리비로는 어쩌지 못했다, 바닥이 잃어버린 부력을 그늘로 눌러놓은 이곳.` 젊은 시인 신용목의`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는 이처럼 사람 사이의 여운이 감지된다. 비망록에 새겨둔 바람 같고 물풀 같던 마음결이, 머리가 아니라 손끝이나 가슴으로 읽힌다.

사람이 지나간 마음자리는 어지럽기 마련이다. 싸리비는커녕 손부채 한 번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부력 잃은 그 자리엔 그늘이 눌러 채운다. `걸음이 찍어 놓고 간 발자국마다 감잎이 앉아 있었다 어깨가 아팠다`라고 시인은 마치 독자의 마음 끝을 낚기라도 하듯 끝까지 눈썰미라는 낚싯대를 놓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가면 그 발자국마다 감잎이 앉아 어깨가 아프긴 하다. 그 감잎 줍기 위해 날개를 너무 꺾기 때문이다.

시집을 받을 순한 이는 마당이 어지럽지도, 부력을 잃지도, 어깨가 아프지도 않기만을. 그저 `사람이 지나갔다`에서 시인을 뛰어 넘는 무한 발산의 발랄한 상상력을 채워갔으면.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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