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보도들이 이어지자 군대에 대한 명랑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말한다. 군면제 받은 당사자들은 군대 가는 것을 원했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그 말도 맞겠다. 군필자가 되고 싶지만, 주변의 강권이나 환경적 학습에 의해 안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경우도 있으니.
내 욕망은 따지고 보면 순수한 내 욕망이 아니다. 내 내면의 의지는 실제론 타자가 욕망하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의 타자성에 대해서 라캉은 `주체가 스스로를 발견하고 제일 먼저 느끼는 곳은 타자 속에서이다.`라고 통찰했다. 군 입대 면제를 받거나, 판검사가 되거나,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취직하는 것 등은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원하는 타자의 욕망 일순위에 그것이 있고 주변에서 원하니 따를 뿐이다. 명예와 안정이 보장되니, 마치 처음부터 그 길을 가려고 했던 것처럼 착각할 뿐이다.
개별자의 자아는 스스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타자를 매개로 다듬어지거나 만들어진다. 타자를 넘어서 진정한 자아의 욕망을 회복하는 길은 쉽지 않다. 타자의 욕망, 즉 부모나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가면 실패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자의 길은 진정성이 담보된 길이 아니기에 갈등하게 된다. 그리하여 라캉의 말대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 날 수 있어야만`하는 사유를 낳는다.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릴 순 없다. 다만 타자의 욕망 속에서 끊임없는 자아의 욕망을 탐구하는 의지라도 있어야 내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