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이`오만과 허영`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오만한 사람은 표리부동하지 않다. 근거 없는 우월감의 확신에 차 있어 타인도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우월함을 타인이 느끼게 하기 보다는 그 우월감 때문에 타인이 비굴함을 느끼게 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든다.
반면에 허영이 많은 사람은 표리부동하다고 보았다. 자신의 우월성을 확신하진 않지만 타인이 그것을 인정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자신이 가진 색깔 이상으로 화려하게 타인이 봐줬으면 하고 바라는데, 이때 공정한 관찰자가 나타나 본래 색깔로 봐버리기라도 한다면 수치와 모욕을 느낀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이 두 가지 결점은 동일한 캐릭터 안에 존재해, 오만한 사람이 곧 허영에 차 있고, 허영에 찬 사람은 흔히 오만할 수도 있단다.
재미있는 것은 애덤 스미스는 지나친 비하 보다는 지나친 오만이 낫다고 보았다. 과도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는 스스로와 공정한 관찰자 모두에게 덜 불쾌하다고 보았다. 자기비하와 자책에 비하면 허영과 오만이 훨씬 솔직한 감정이라고 보았다. 발전가능성만 보더라도 오만파가 자기비하파에 비하면 훨씬 높지 않겠나. 잘난척하는 밉상보다는 짜증나는 진드기가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걸 이백여 년 전 애덤 스미스도 갈파한 것일까. 앞서 말한 인간 이기심이 사회적 공감을 획득한다면 다수의 선이 될 수도 있다는 논지가 여기에도 적용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