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원통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그대로 40여 분을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과 마음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친 듯이 벽을 두드려 위급함을 알렸다. 탈출을 하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런 사람 제법 있다며 촬영기사가 위로를 해준다. 항불안제를 맞고 재촬영을 하겠느냐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좀 진정이 되자 멍청하고 창피하단 생각에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사전 설명 없는 가운데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다. 좁고 폐쇄된 공간 자체의 위압감, 바깥과의 소통 단절에 대한 불안,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어쩌지 하는 걱정, 등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급작스런 불신감으로 불안해할 수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한데 그것이 과하다 싶으면 스스로 당황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리적·유전적 요인, 과거의 경험, 현재의 정보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불안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내가 시원하게 모르니 더 불안하다. 이토록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었나, 이런 불안감을 스스로 자초한 건 아닐까,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왜 몸과 마음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거지, 하는 혼란스러움이 한동안 휘젓고 다닐 것이다. 여기저기 불안의 시대를 살다보니 몸과 맘이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팽팽하게 부푼 풍선 같은 맘 걷어 내고 그 자리에 낭창거리는 버들가지 하나 내다는 연습을 해야겠다. 자고로 긴장은 불안을 낳고, 여유는 안심을 낳으리니.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