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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 자랑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2-05 00:15 게재일 2013-02-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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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가족 제도의 보편적 정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스스럼없기란 쉬운 게 아니다. `친동생처럼 대한다`는 시누이의 말은 `딸처럼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말 만큼이나 공허할 가능성이 높다. 혈연으로 맺어진 감정과 사회적 계약 관계에 의해 생긴 그것은 심리적·정서적 출발부터 같을 수가 없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시누·올케 관계는 `스스럼없음`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리라.

내게도 시누이가 한 분 있다. 손위인데 예의 친자매처럼 흉허물 없는 관계는 아니다. 나이 차가 있는 시누이를 내 쪽에서 어려워하고 존경한다면, 당신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역할이다. 시누이 노릇 한답시고 내게 며느리로서의 의무감을 압박하거나 눈치 비슷한 거라도 준 적이 없다. 이십여 년 동안 한결 같은 배려와 관용으로 대하신다.

통념상 해야 할 며느리의 도리마저 시누이가 저 만큼 앞서서 본보기를 보이신다. (실은 내가 안 하거나 못하니까 시누이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의 물리적·정서적 지원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올케인 나의 정신적·심리적 상담자까지 자청하신다. 시누이로서 올케에게 왜 서운한 감정이 없겠는가. 한데 천사표 시누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 위주로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인정해버리면 서운한 것도 잠시다.` 라고 말하는 분이다.

천성이 고운데다, 자기 수양의 모범을 보이는 분을 시누이로 만난 건 내겐 큰 복이다. 가끔씩 남편이 힘들게 할 때도 `아참, 내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시누이가 있었지`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이다. 사람 관계는 상대적이다. 나처럼 까칠하고 칠칠치 못한 이도 시누이라는 바람막이 덕에 적어도 나쁜 며느리는 면하고 산다. 내 깜냥만으론 어림도 없다. 좋은 사람 곁에서 좋은 사람 흉내 내기란 얼마나 쉬운가. 내가 며느리로서 평균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오롯이 시누이 덕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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