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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가 붉어졌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1-21 00:10 게재일 2013-01-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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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홍까오량 가족`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강렬한 인상이 모옌의 원작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다.`홍까오량`은 `붉은 수수`를 뜻하는데, 이 책 1,2장`붉은수수`및`고량주`부분이 영화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감독 `장이모우`와 배우 `공리`를 위한 것이었다.

관람객 입장에서 원작가인 모옌까지 주목하기는 쉽지 않다. 원작을 떠난 영화는 그 자체로 독립된 예술이기를 원하고, 개봉 당시는 모옌이 전 지구촌 작가도 아니었다. 웬만한 이슈가 되지 않고는 영화의 원작가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모옌은 행운 작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란 쾌거 하나로 장이모우나 공리 못지않게 `붉은수수밭`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연작 중편들로 이루어진`홍까오량 가족`은 항일 무장 투쟁, 애달픈 민중들의 삶, 한 가족의 애증사 등이 일렁이며 붉어가는 수수밭 사이로 교차 편집되어 있다. 읽을수록 울림이 큰 것은 우리의 일제강점기 역사 또한 그 작품 속 궤도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서걱대는 수수잎에 손가락이 베일만큼, 익어가는 고량주에 온몸이 취할 만큼 아련하고 강렬한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은 조금 아쉬웠다.

소설가를 이야기꾼과 문장꾼으로 나뉜다면 모옌은 전자에 속했다. 할 말이 넘치다 보니 구성이 산만해져버렸다. 중복되는 에피소드와 반복되는 묘사 때문에 피로함이 몰려왔다. 생생하고 사실적인 표현도 너무 잦으면 독자는 지루해진다.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작가이다 보니 곁가지치기를 덜한 것 같다.

목마르다고 끊임없이 두레박질만 할 수는 없다. 효율적인 두레박질은 목을 충분히 축일 때까지 만이다. 선명한 이야기에 분명한 호흡을 기대한 독자라면 책 두께가 조금 더 얇아도 좋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홍까오량 가족`은 이야기와 구성을 동시에 바라는 걸 버린 뒤에야 더 잘 몰입하게 되는 작품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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