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남편의 죽음보다 더한 슬픔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의 무관심이다. 우울증 앓는 아들은 재혼한 아내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다. 담당의는 이 모든 상처는 엄마로부터 기인한다는 진단을 내린다. 여자의 악다구니, 매질, 냉소적 태도가 아들의 트라우마가 될 줄 그때는 아들도 엄마도 알지 못했다.
우연한 계기로 여자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하버드대 출신의 남자는 잘난 척에다 오만한 것으로 마을엔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데이트를 거듭할수록 남자에게 끌린다. 단 한 번도 그 잘난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걸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다. 역시 겪어보지 않은 모든 것에는 판단 유보가 필요해, 라고 여자는 중얼거린다. 동성애자인 딸과 절연한 사연을 털어놓는 남자에게 여자는 깊이 공감한다. 여자 또한 삐걱대는 모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던가.
여자의 유일한 희망은 죽을 때 숨이 금세 끊어지기를 바라는 일. 남편의 죽음과 희망 없는 아들과의 관계 앞에서 그녀가 바라는 건 그 뿐. 하지만 남자를 만날수록 생의 활기를 얻는 것은 어쩔 것인가. 의외로 보수적 정치 성향인 남자에게 실망하기도 하지만 아픈 남자가 여자를 기다릴 땐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
정서적 심리적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노년의 남녀 눈빛은 적요하고 따스하다. 삶은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기에 맞잡은 두 손이 필요한 것. 여자는 아직은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다. 늙은 소도 쟁기질 할 수 있고, 오랜 강은 안으로 깊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여자 나이는 일흔 넷이고, 이름은 올리브 키터리지. 통찰 깊은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동명 소설의 주인공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