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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꾸린 것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2-31 00:07 게재일 2012-12-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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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지는 풀잎처럼, 스러지는 눈발처럼 또 한 해를 보낸다. 저리고 아쉽기만 한 나날들.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달뜬 나머지 희망의 단춧구멍을 터무니없이 넓게 뚫는다. 옷의 종류나 활용도 등은 고려치 않고, 일단 계획이란 단춧구멍부터 뻥 뚫어버린다. 구멍에 맞는 단추를 찾아, 온 열두 달을 헤맸지만 끝내 제대로 된 것 하나 구하지 못했다. 한 해의 끝, 큰 구멍에 맞지도 않는, 자그맣고 어설픈 단추 몇 개만 구한 꼴이다. 해마다 거창한 계획에 미미한 결과라니! 계획 실천 유무를 따지는 연말이라면 안 그래도 치운 가슴 더욱 찬바람만 들겠다. 해서 내 곁을 맴돌던 두 단어를 떠올리면서 한해를 마무리해야겠다.

우선 `힐링`이란 말을 되뇐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마음 둘 곳 많지 않아 우왕좌왕한다. 당신과 나, 툭 터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외롭고, 어디서나 힘들다. 무엇을 하든 상처 받기 쉽고, 언제나 마음은 흔들린다. 이런 나약한 속성을 지닌 우리에게 필요한 게 치유의 연대감이다. 위로의 주체이자 대상인 개별자끼리 공감하다 보면 진심으로 치유에 맞닿게 된다. 힐링은 연대의 감정이지 폐쇄적 구원은 아니다. 골방의 치유보단 사람 곁이 한결 낫다. 상처이지만 이내 구원이기도 한 사람, 그 자체가 내겐 힐링이었다.

`깨달음`도 있다. 생활의 발견이랄까. 깨알 같고 바람결 같은 생각들이 내면을 키운다는 것을 알았다. 소박한 깨침이 온 우주를 들썩이게 할 만큼 신선한 충격을 줄 때가 있다. 생의 근원을 뒤바꿀 수 있는 큰 깨달음보다 제비꽃 같은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발견이 더 감동스런 법이다. 지면 상 다 얘기할 순 없지만, 더 많이 내어주고, 더 많이 보듬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베풀라고 몸과 마음으로 가르쳐준 이들께 감사한다. 잡다한 생각들이 온몸과 마음을 휘감을 때 저릿하고 따뜻한 그들의 한 호흡을 떠올린다. 안 그런 척 하면서 내 부실한 나무뿌리를 슬쩍슬쩍 다독여준 모든 이에게 감사장을 대신한다. 내 어설픈 한 해가 감사로 아롱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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