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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어머니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2-28 00:52 게재일 2012-12-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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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 아들 전화 받고 서울 나들이 가신다. 임신한 며느리 힘드니 아이 둘을 보살펴 달라는 요청이다. 고향 떠나 사흘 밤도 잔 적 없는 어머니, 난생 처음 일주일 예상으로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아들의 핏줄이 아닌, 며느리가 데리고 온 두 아이가`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옛날 수학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동료 교사와 사랑에 빠져, 아버지와 아들에게 자주 신경질을 냈다. 잘못했다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 어머니는 아들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첫 결혼에 실패한 것도, 그 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도 다 어머니 탓이다. 이혼 전문 사교 모임에서 두 번째 아내를 만났고, 상처 많은 두 영혼은 상담의사의 도움으로 정신적 자립을 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오죽하면 상담의를 따라 서울로 이사 갔을까.

어머니, 사흘 만에 짐을 싸신다.`할머니` 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들의 냉정한 시선 때문도, 며느리의 맹한 태도 때문도 아니다. 어머니를 서울로 오게 한 아들의 진짜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아들 부부는 `용서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어머니를 초대했던 것이다. 심리 치료 모임에서 의사 앞에서 이 모든 걸 재연할 아들에게 분노가 인다. 아들의 트라우마 극복 미션에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수치심에 어머니는 치를 떤다. 여기 나오는 어머니는 소설`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뉴욕 가는 올리브의 서울 행 버전이다.

용서에 대해 생각한다. 용서하거나 용서받는다는 건 지극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용서하는 자는 준비가 필요하고, 용서 받는 쪽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편하고자 성급히 용서를 바라도 안 되고,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섣불리 그것을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급하면 체한다. 주고받는 용서의 방식은 어느 누구의 일방적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상호 합의에 도달했을 때 가장 명쾌하다. 당사자 둘 다 만족하는 이기심이어야 하는 용서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시간만이 그것을 해결해준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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