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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사(南塘詞) 16수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2-19 00:13 게재일 2012-12-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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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나는 여성적 시각을 좀체 버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고전이 남성적 시각을 견지하는지라 여성이 등장하더라도 변변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게 왜 그리도 안타까운지. 평소 여성이라서 맛보는 자부심보다 여성이기에 느끼는 피해의식이 더 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스밀 것이다.

요즘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다산의 소실이었던 남당포 여인 장면에서 또 연민이 인다. 다산의 유배 시절 뒤늦게 소실이 된 그미는 홍임을 낳고, 해배된 다산이 본가로 돌아갈 때 따라간다. 하지만 부인 홍씨에 의해 내침을 당하고 모녀는 강진으로 되돌아온다. 그 후 모녀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홍임 모녀에 관한 시가 바로 `남당사 16수` 이다. 남당포에서 온 여인의 애상을 읊은 시인데 다산이 쓴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시편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홍임엄마가 되어 본다. 베 짜기와 바느질에 제대로 손댈 수 없다. 옷 입은 그대로 닭 울음 그치고서야 벽에 기대 혼자서 신음한다. 어린 홍임은 늙은 아비인 다산이 보고 싶어 보채다 곤히 잠들었을 것이다. 눈물로 얼룩져 화장은 엉망이 되고, 그리움에 진저리치다 보니 비녀마저 떨어져 있다. 긴 밤 지새다보면 다정한 낭군이 꿈속에나마 반쪽 침상을 찾아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산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데바람에 오래 떤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다산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부인 홍씨는 왜 오랜 세월 기다린 보람도 없이 소실 때문에 맘고생 해야 하며, 홍임모 역시 무슨 죄로 그토록 모진 칼바람을 견뎌야만 했을까. 여성적 시각에서 다산을 둘러싼 일상사를 엮는다면 어떠할까. 깊은 우물 속 두레박을 내려도 물 한 모금 얻을 수 없는, 차마 처연한 슬픔의 장이 되지 않을까. 한 남자 때문에, 한 세월 때문에 지난했을 세 여자를 그려본다. 마른 눈물이 난다. 할 수 없이 나도 여자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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