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있는 사람끼리 모여 글공부를 한다. 잘 익은 밤처럼 토실토실한 남의 글을 읽기도 하고, 덜 말린 대추 같은 누글누글한 제 글을 다듬어도 본다. 남의 좋은 글을 읽을 땐 감탄하고 부러워할 입과 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글을 숙제로 내놓아야 할 날짜가 다가오면 안절부절못한다. 남보란 듯 합당한 이유가 생겨 떳떳이 결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글 좀 잘 써보고자 모였는데 글이 제 발목을 잡아 버린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있을까? 결실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 왔는데도 우리들의 글쓰기는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수고 없이 좋은 글이 나올 리 없다. 그럴수록 책상 앞에 앉으면 압박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즐거워야 할 글쓰기가 괴로움이 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쓰려고 용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글이 되지 않을 때는 글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좋다.
활자 빽빽한 종이 대신 아름드리 소나무 둘러치고, 늦은 민들레가 피는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이름 붙여 야외수업. 오늘 만큼은 숯불 삼겹살과 소주 한 잔도 풍경의 일부가 되어도 좋다. 밋밋한 평화보다야 울퉁불퉁한 들끓음이 글 소재로는 낫지 않던가. 연필을 버려야 할 적당한 타이밍이었을까. 출석률도 좋은데다 여유가 넘친다. 유머가 길을 트니 배려가 뒤따른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건, 반만 맞는 말이다. 때론 책을 버리고 풍경 속에 흠뻑 젖어야 길이 보인다. 푸성귀 뜯고 씻던 시린 손, 쉴 자리 마련하려 굽히던 연한 무릎, 연기 마셔가며 모닥불 피우던 잔기침 소리, 바람막이로 서서 따뜻한 물 끓여내던 환한 미소, 이 모든 것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내고 있었다. 글이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풍경 속에 글이 있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