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의 도둑들은 제 그릇 만큼의 영향력으로 서로 얽히고설킨다. 이 진흙탕 싸움에 심리전은 필수요, 배신과 음모 또한 난무한다. 그 많은 도둑들 중 유난히 눈길 가는 캐릭터가 있었다. `씹던껌`. 닉네임처럼 그녀는 누군가 씹다 버린 껌 같은 퇴물 연기파 도둑이다. 국내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홍콩 배우 임달화와 짝을 이뤘는데, 중년의 로맨스와 허망한 죽음이 영화 전개와는 어울리지 않게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바람결을 가르는 외로운 미소, 고급 투피스에 이는 보푸라기 같은 생채기, 거친 대사로 숨기고픈 힘겨운 생의 환멸 등 반생을 넘긴 중년 여성이 품을 수 있는 온갖 비의를 씹던껌은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도둑들의 행태와는 걸맞지 않은 그들의 로맨스가 죽음으로 치달을 때 황망하고 안타까운 건 잠시였다. 어쩜 그들의 죽음이 승화된 로맨스의 다른 길은 아니었을까 하고 감독의 의중을 넘겨짚게도 되는 것이었다.
힘들고 외롭다고 눈으로 말하는 여자, 그리하여 남이 버린 꿈을 씹다 버린 껌 줍듯 산 여자, 결국 죽음으로 용도 폐기된 여자. 하지만 끝내 죽어서 사랑을 산 여자. 영화가 끝날 때까지 덜 꿰맞춘 직소퍼즐을 만난 것처럼 허하게 만드는 여자. 클림트 그림처럼 아련한 그 실루엣을 찾아 자꾸만 조각그림을 맞춰보게 되는 것이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