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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황혼을 달리는 `실버 라이더`

권광순기자
등록일 2012-06-27 21:00 게재일 2012-06-2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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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바이크동호회 채대진·권금희 부부
▲ 바이크 마니아 채대진·권금희 부부가 지난 25일 안동댐 월령교 부근에서 `번개투어` 중에 자신의 애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세상만사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그저 바람을 가르고 싶다. 가죽점퍼를 입고 마스크나 장갑을 챙기는 순간에도 나의 마음은 이미 자유로운 세상밖에 맴돌고 있다. 열쇠를 꼽고 슬며시 스타트 버튼을 눌러주면 평소 컴컴한 창고에 홀로 웅크리고 있던 이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웅∼ 웅∼` 우렁찬 소리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덩달아 달아오른 내 심장의 박동도 더욱 빨라진다. `주인님, 어디로 모실까요….` 가끔 착각이 들 정도로 강철 심장을 가진 이 녀석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난 이제부터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자유인이 된다.”

안동 유일의 `실버 라이더` 채대진(67·안동시 용상동) 어르신의 바이크 예찬론이다.

그는 칠순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자신의 바이크에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영화 속의 `로보캅`처럼 변해 버린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바이크로 전국을 누빌 정도로 마니아 수준이다. 수년전 공직 생활을 끝으로 현재 개인택시 운전이 직업이지만 아직도 그의 바이크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바이크하면 우선 위험하다는 인식 탓에 흔히 `과부 틀`로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 권금희(61)씨는 남편만큼이나 바이크 매력에 푹 빠졌다. 결혼 초반 그녀는 각방을 쓸 정도로 극구 말렸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편 권유로 실제 바람의 맛(?)을 본 후로 남편이 소속된 동호회에 가입할 정도로 오히려 더 적극적이다.

채씨는 처음 소형 125cc 바이크로 시작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배기량이 큰 바이크로 바꾸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토록 원했던 배기량 1천800cc급 초대형 바이크를 장만했다. 고속이든 저속이든 투어 할 때마다 헬멧 속에 장착된 `헤드셋`으로 부인과 자연스레 대화도 하면서 자연바람을 즐긴다. 그만큼 부부애도 두터워졌다.

그가 소속된 `바람을 가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아주 특별난 모임이 있다. 바로 7년 전 안동에서 창립한 `안동라이더스`라는 바이크 동호회다. 당시 10명에 불과한 동호회원 수는 현재 28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과속을 일삼거나 품위를 손상하는 행동이 적발되면 강제 탈퇴 규정이 있을 정도로 엄격한 회칙도 있다.

이 모임은 매월 셋째 일요일마다 정기 투어를 한다. 동해나 울진, 영덕, 포항 등지는 이웃집 담넘듯 다녀오는 기본 코스가 됐다.

▲ 지난해 포항 물회 축제 시기에 맞춰 안동라이더스 소속 동호회원들이 각종 바이크로 투어하는 장면.

부산을 비롯해 경남 밀양, 충무 인근은 중거리 코스, 땅끝마을 해남이나 강화도 등 장거리 코스에 이르기까지 경우에 따라 1박을 할 때도 있지만 전국 어디든지 당일 코스로 `자연 바람`을 즐긴다.

`번개투어`라는 것도 있다. 주말이나 아주 특별한 날에 문자를 통해 임시로 갑자기 모여 임의로 정한 곳에 투어를 하는 것이다. 개인마다 사정이 달라 참석률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전체 회원 가운데 10여명 이상은 항상 모인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각종 지역행사나 축제 등의 퍼레이드에 참석하기도 하고 태국이나 일본 등 해외 원정 투어를 하기도 한다.

건고추 도매상, 전통시장 생선장수, 운전기사, 대학교수, 방송국 직원, 단순 노무자, 주부 등 각각의 직업에다 30대부터 머리가 희끗한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나이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은 직업에 대해 서로 묻지도, 그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바이크가 좋다는 자체만을 소중한 인연으로 여긴다. 서로 바이크만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상대의 마음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옛부터 우리 선조 일부에서는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자연 바람을 맞으며 세상 모든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 보냈지요. 현대에 들어서는 바이크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사는 기분이지요”

채태진 어르신은 애마 바이크에 시동을 걸더니 금세 바람처럼 사라졌다.

안동/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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