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등록일 2012-06-21 21:10 게재일 2012-06-21 19면
스크랩버튼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어느 날 보니 왼쪽 팔뚝의 살갗 밑에 아주 작게 손에 잡히는 것이 생겨 볼록 튀어나온 모양이 되었다. 여름이면 반팔 옷을 많이 입게 되니 이 작은 티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더구나 왼손잡이이다시피 한 내게 왼팔은 어떤 미묘한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 수 없었다.

하루는 라식 수술하던 생각을 했다. 예전에 대학 동창이 베이징 특파원으로 갔다 돌아왔는데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대학 때부터 항상 도수 높은 안경을 썼던 친구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 힘들어 라식수술을 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수술하기 전에는 참 망설이고 주저했는데 하고 나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보고도 그렇게 쓰고 다니지 말고 단 일 년을 살더라도 안경 없이 살아보도록 수술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생각하니 그도 그럴 듯했다. 다짜고짜 이름 난 병원에 전화를 해서 찾아가 검사를 하고 수술 날짜까지 예약했다. 수술을 하고 나니 과연 시원했다. 라면 먹을 때 안경을 벗어 서린 김을 닦아내지 않아도 되고, 안경을 쓰고 자다 구부러뜨리고 부러뜨리고 하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일어날 때 안경 어디 뒀더라 더듬거리며 찾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았던가.

그래, 이 작은 잡티도 병원에 가서 쉽게 없애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 근처에 병원이 하나 있는데, 건물에 커다랗게 써붙인 플래카드에 `당일입원 당일수술 당일퇴원`이라고 써 있었다. 평소에는 저런 병원이 어떻게 사람을 고치랴 하고 흘겨보며 지나다니던 내가 이 잡티를 없애겠다는 생각에 불쑥 그 병원 피부과를 찾아들었다.

레이저 시술이라고 했다. 시술을 받고 2주쯤 거즈를 붙이고 있으면 감쪽같이 잡티 이전 팔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내게는 왼팔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그 의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레이저 시술은 전신마취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단백질 타는 내가 나는 것도 참으면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꿈을 꿨다.

그런데 아니었다. 레이저 시술을 받은 자리에 화상 입은 흉터가 생기더니 없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살갗 안에 자리잡은 잡티는 2mm 짜리인데, 이 흉터는 1cm나 되었다. 의사를 찾아가 따지지는 못하고 물어는 보니 피부가 무슨 체질이라서 그렇다며 다시 시술을 받으면 원래대로 회복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여러 고민 끝에 결국 나는 1cm나 되는 흉터를 왼쪽 팔뚝의 흉터를 안고 새로운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이리저리 마음은 갈등이 생기지만 참고 견뎌보자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라식 수술 한 것도 감쪽같은 것만은 아니어서 눈에 건조증이 생겨 인공눈물을 쓸 때도 있고 밤에는 유난히 눈이 침침해지는 것 같은 문제도 있다. 더구나 이제는 본격적으로 가까운 것이 안 보일 나이가 되기까지 하니 눈이 곧 생명인 내게 불안감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봄에 학생들과 함께 경상북도 봉화, 영양 쪽으로 여행을 가서 어느 산 밑 음식점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벽에 세로로 경계문을 써 놓은 게 있어 자연히 눈이 갔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점은 병을 나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병이 나으면 또 망념이 생겨 제 몸을 더 나쁜 곳으로 끌고가니 병이 낫기를 원하지 말고 병과 함께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원래대로 깨끗이 돌아가는 법은 없다. 내 몸도, 내 마음도 어찌 한 번 파헤쳐진 것이 원래대로 고스란히 깨끗해지랴. 모든 것이 완전한 세상으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이나마 잘 보수해서 시간과 더불어 천천히 견뎌나갈 수밖에 없으리라.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