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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어떤 사람?

등록일 2012-04-05 21:47 게재일 2012-04-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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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옛날에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는 메토이코스(metoikos), 또는 메토이코이(metoikoi)라고 부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거류외인 또는 재류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용어 말고도 이방인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지만, 이 말에는 종교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이 더 첨가되어 있어 조금 구별해서 쓸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유대사회의 이방인이라고 말하면 자연스럽지만 유대사회의 거류외인이라는 말은 어딘가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스는 종교적인 맥락에서 다신교 사회였기 때문에 이 거류외인들은 상업이나 학문 등의 목적에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럼 그들의 신분적 지위는 어떠했던가? 그들은 그리스 도시국가라는 시민적 공동체의 일원은 아니었다. 그리스에서 시민이라 하면 세 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첫째, 그들은 공동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둘째, 그들은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셋째, 그들은 그 공동체가 신을 섬기는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시민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부분 성인 남성이었다. 그렇다고 여성이 전부 시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일에 참여하지 못하기는 하되 자유로운 시민의 배우자와 딸로서 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민 공동체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 첫 번째는 바로 노예다. 전쟁의 전리품이거나 채무 노예거나 노예는 일체의 공적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둘째로 메토이코스들은 시민적 권리와 의무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시민들과 더불어 존재했지만 시민적 권리와 의무의 영역 바깥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국외자, 도시국가 내부에 존재하되 시민공동체의 외부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오늘과 같이 치열한 선거가 펼쳐지는 마당에 예술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예술가는 고대 그리스의 메토이코스처럼 일종의 내부적 외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민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집단들의 어느 한쪽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할 일은 어느 편에 서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립하는 구조의 외부에 서서 이 공동체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판단하고 예감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국가의 지도자와 같다고나 할까? 국가는 민중에 의해 이끌어져서는 안 되고 예술가, 시인에 의해 이끌어져야 한다. 지혜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 오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무슨 전체주의냐 할 것이다.

그러나 조지 오웰이 `1984`를 쓴 것은 그 스스로 사회주의자였으면서도 스페인 내란의 어느 한 쪽 편의 위치에서 벗어나 그가 살아가는 시대를 휩쓸고 있는 전체주의의 병독을 갈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작품은 불멸의 고전이 되어 있는데, 그가 만약 어떤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요즘 예술가들, 소설가들, 시인들이 현실의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발언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그 발언들이 무위하다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또 현실 속에서 어느 입장이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도 있다. 어느 면에서 나는 내심 그 사람들 중의 어느 한 쪽 입장에 더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가가 견지해야 할 더 근본적인 태도는 이 시대의 메토이코스가 되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느 파당에 쉽게 서면 그 예술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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