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출신인 그라쿠스 형제는 호민관이 되어 가진 자들의 토지를 빼앗아 평민들에게 나누어주는 토지 개혁 작업과 빈민 구제 사업을 벌인다. 개인의 토지 소유 한도를 정하고 자작농을 육성해서 평민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혁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원로원의 반대로 실패한다. 그냥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30세의 형 티베리우스는 원로원에 살해당한다. 동생 가이우스는 공공의 적으로 몰려 33살에 자살을 강요당한다. 형제 모두 무덤도 없이 테베강에 시체가 버려진다. 기득권은 그렇게 철옹성이었다.
1884년 조선. 33살의 청년 김옥균 등 개화파는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혁명을 꿈꾼다. 그들의 꿈은 청나라의 사대에서 벗어나 독립 근대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21살의 청년 서재필이 이끄는 개화파의 행동대는 민태호를 단칼에 척살하는 등 민씨 세력들을 축출한다. 이들은 청나라에 조공을 폐지하고 평등권을 주장하는 등 성공한 듯 보이던 정변은 그러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난다. 조선 정부는 이 사건을 역모로 규정하고 주모자는 대역죄인으로 몰려 가족이 몰살당하거나 해외로 망명을 가야 했다. 미국으로 달아나서 10여년 뒤 의사가 돼 돌아온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만들고 자주독립을 외칠 때 뜻을 같이하고 독립운동에 동참한 청년 이승만은 22살이었다.
2012년 대한민국. 선거의 해가 시작되자마자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국민을 상대로 환심 사기 경쟁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 해 10·26 보궐선거에서 뜨거운 민심을 확인한 정치권의 긴장도는 예전에 없이 심각하다.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한나라당은 박근혜 위원장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권은 박 위원장이 당 쇄신을 위해서 내려 놓겠다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놓고 설왕설래다. 공천권이라거나 지역구 불출마라는 등.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키 워드는 쇄신이다. 2천여년 전 로마에서도 있었고 127년 전 조선에서도 있었다. 인적 쇄신을 강조하면서 제도 뿐 아니라 나이 자체가 혁파해야 할 상대가 돼 버렸다.
그러나 정작 놓치는 것이 있다. 로마에서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에 실패한 것도, 조선말 개화당의 꿈이 3일 천하로 끝난 것도 모두 기득권의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물론 그 주역이 젊은 20대 30대였지만 단지 그들의 등장 자체가 쇄신은 아니다. 비록 젊은 그들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열정과 정책이 혁명이었음을 역사가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은식이 그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제1장을 `갑신독립당의 혁명 실패`로부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근대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최초의 움직임에 대한 예우이자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대해 무게를 실었다는 증거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물갈이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쇄신은 나이가 아니라 인물 자체의 의지이고 그 뜻이 혁명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득권은 그냥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