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된 지 몇해 째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시집이다
시인이 죽은 뒤에도 꼿꼿이 그 자리에 꽂혀 살아 있다
나는 그 시인의 고독한 애독자를 안다
본문은 펼쳐 읽지 못하고 제목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날마다 시집 귀퉁이만 밟아보다가 돌아서던 그를 안다
햇볕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을 안다
좋아하는 시인의 책이지만 애써 펼쳐보지 않는 마음, 날마다 산에 가듯 시골의 한적한 서점에 들러 햇볕의 발자국만을 가만히 놓아두고 오는 사람. 시인은 이미 죽었지만 시퍼렇게 살아있는 시들이 빼곡한 시집이 꽂혀있는 시골의 서점에도 시간은 흐르고 생의 한 부분들이 낡아가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