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파랗게 쓸고 있는 것처럼, 솜이불을 깔아놓은 것처럼, 염전에 소금이 널려 있는 것처럼 등등의 `아름답다`란 그 말을 뒷받침하는 식상한 이런저런 언어를 궁리하다 결국 사진 몇 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름답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것이지 꼭 그것을 어떻게 아름답느니, 이래서 더 멋지다느니 등 수식할 형용사를 찾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 아닌가. 그렇기에 인간은 오래 전부터 추함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인간이 찾아야 할 덕목일 것이다.
그야말로 단풍이 절정인 아름다운 가을이다.
길가의 은행나무는 이미 촛불을 켜 놓은 듯 환한 모습으로 거리를 밝혔고, 플라타너스는 넓은 이파리를 멍석 펼치듯 길바닥에 깔아놓았다. 산행에서 바라보는 산색은 또 얼마나 감탄할만한 일인가. 봄날의 꽃 사태나, 연초록 녹음도 좋지만 가을의 산색은 색색깔의 무늬 때문에 발걸음 옮긴 능선마다 멈추게 한다.
그 절정의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셔터를 누르며 사진 찍는 것이야말로 오래 전부터 내 몸에 붙은 취미였음을 발견한다. 사진 한 장으로 몇 장의 글을 얻기도 하지만 한 장의 사진 자체가 수많은 언어를 내포하고 있는 함축된 문장이라 생각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전업 사진가가 아니면서도 찍은 사진을 생각해 보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30여 년 전부터 찍기 시작한 사진이다. 그러고 보니 내 손을 거친 카메라 숫자만 세어 봐도 무려 열 대 이상이니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흐르는 세월만큼 카메라 기종도 시대 따라 변했다. 하프 사이즈 흑백 올림퍼스(아날로그) 카메라에서부터 오늘의 디지털 카메라까지 발전한 카메라는 사진 찍는 일도 훨씬 수월해하게 해 줬다.
그것은 나만의 특권은 아닐 것이다. 핸드폰과 소형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사진 찍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반화 됐다. 종종 유명 배우나 가수가 거리를 지날 때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진뿐이랴 동영상을 비롯하여, 각종 사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찍히고, 그 사진은 만인의 공유물로 `유튜브`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터넷 공간에서 생명체처럼 이동하며 숨을 쉰다.
박물관, 문학관, 기념관, 역사관 등의 곳에서 만나는 옛날 사진은 또 어떤가. 사진 속의 배경을 보면서 당시의 시대를 떠올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질곡의 우리 역사에서도 사진은 죽비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바른 길로 안내한 적도 있다. 그러니까 사진만큼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드물다.
`아름답다`란 그 단어에 합당한 말을 찾기 위해 수많은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고 설명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저 상상으로만 떠올릴 뿐이다. 반면에 사진 한 장은 그 장면을 직관(直觀)으로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이 사진의 커다란 장점이다.
변하는 순간을 한 순간으로 잡아두는게 사진이다.
아름다움의 디딤돌 역학을 하는 한 장의 추억이 되기 위해 피사체로 존재하는 우리는 보다 더 이웃과 따뜻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배경으로 찍히는 자연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이 가을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사진 한 장 한 장이 영원으로 잇는 추억의 디딤돌이란 것을 눈앞에 떨어진 단풍처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