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핍박받는 우리 민족을 위해 `동방의 등불`이란 시를 써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평화의 전도사`였다.
1913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는 흔히 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소설·연극·음악·무용·회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족적을 남겼다. 특히 회화는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타고르는 생에 가장 마지막 회화에 천착했고, 그가 남긴 작품에는 그의 사상이 잘 표현돼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화는 그에게 `삶의 마지막 수확(The Last Harvest)`이라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오는 11월27일까지 아시아관에서`타고르의 회화`전을 개최한다. 전시는 타고르 탄생 150주년 겸 서거 80주년을 맞아 인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기획해 전세계를 돌고 있는데 국립중악박물관은 대한민국-인도 우정의 해를 기념해 특별히 마련했다.
`마지막 수확`이란 부제를 단 이번 전시에는 타고르의 회화작품 49점 및 타고르 관련 서적이 선보인다.
타고르는 20세기 초부터 문화운동을 통해 인도 현대미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만, 정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60대 중반부터였다. 당시 그는 범인류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까닭에 그의 회화는 세계 미술과의 교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던 타고르는 동양미술, 원시미술 그리고 일부 현대미술사조의 흐름을 접하고 화가로서의 자신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그는 그가 갖고 있는 리듬의 감각, 운율을 시각적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고르는 1930년에는 파리·런던·뉴욕 등에서 순회 전시를 열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들 작품은 서구의 현대미술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유럽 및 구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음악과 글은 벵골과 인도를 위한 것이나 언어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회화는 전 세계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대상을 정하고 그리지 않고, 그냥 펜과 붓이 나가는 대로 그림을 완성했다. 대부분 의 작품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역시 제목이 없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타고르의 의도를 살려 별도의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화풍의 이해를 돕고자 시기별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대상을 기준으로 총 4부로 구성했다.
1부 `상상의 동물들`에서는 현실세계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생명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타고르의 그림은 오기(誤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글귀를 정정하기 위해 그은 줄을 시각적 형태로 표현한데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가 표현한 첫 번째 형태는 원시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상상의 동물, 또는 그 결합이었다. 2부 `풍경과 꽃`에서는 점차 자연의 형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타고르의 모습을 보여준다. 풍경화는 바로 그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기는 인물의 형태들도 함께 나타나는 다소 모호한 시기이기도 하다. 3부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인물과 극적인 장면`에서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담긴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타고르는 인간의 몸을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극(劇)의 씨앗을 품고 있는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4부`얼굴`에서는 그가 그린 다양한 초상화를 전시한다. 그는 고대 사제의 가면과 독립적인 개별 초상화 사이를 넘나들며 구체적인 얼굴을 하나의 인물로 변모시켰다.
문의 (02)2077-9324.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