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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출신 치고 축구 못하는 사람 못 봤어요”

김명득기자
등록일 2011-08-25 20:15 게재일 2011-08-2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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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들도 명절에 모이면 곧바로 시합붙어

풍력단지로 유명한 영덕 창포해맞이공원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축구전용구장. 인조잔디로 된 녹색 그라운드 위에서 연습중인 선수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이곳에서는 동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흔히들 `영덕` 하면 대게를 떠올린다. 조금 나이든 사람이라면 복숭아를 연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덕에서 그 못잖게 유명한 것은 축구다. 그래서 영덕에 따라붙는 별명도 여럿이다. 내륙만 보자면 `복숭아의 고장`, 해안만 보자면 `대게의 고장`이 어울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두를 통칭할 때는 `축구의 고장`이 더 잘 맞아드는 별칭이다.

영덕축구는 광복 즈음이던 1947년쯤 시작된 것으로 지역 원로들은 기억한다. 포항 신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이 거셌던 영해를 중심으로 축구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럴 때 활발했던 것이 면 대항 축구대회였다. 얼마전 포항 신광면에서 60회째 재현된 바 있는 바로 그런 대항전이다. 그리고 영덕 군내 크고 작은 학교 운동장들은 축구선수를 꿈꾸는 꼬마들로 늘 북적거렸다.

영덕군내에서는 강구, 영덕, 영해, 축산, 병곡, 지품 등의 초·중·고교에 축구부가 발족됐다. 그들 학교 대항 축구시합은 불을 뿜었다. 수준이 일취월장하면서 경북 도내에조차 적수가 없어졌다. 무대가 전국으로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국도 곧 제압됐다. 강구초교(당시 강구국민학교)는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을 도맡아 하는 강팀으로 부상했다. 강구중 또한 전국대회에서 항상 우승을 다투는 축구 명문이 됐다.

국가대표급 축구선수들이 속속 배출되는 것은 응당지사였다. 강구중에서 뛴 박태하(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박지호(성남일화 여자축구 감독) 김도균(현 현대중 감독) 김진규(현 중국다렌) 등은 여전히 선수나 감독 등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업팀이나 학교 지도자로 진출해 있는 이들은 더 많다.

물론 세월은 변한다. 이제 영덕에서도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꿈꾸는 꼬마를 보기 힘들다. 축구팀을 운영하거나 교기로 하는 학교도 강구초교, 강구중, 영덕고 3개로 줄었다.

그러나 영덕 사람들의 축구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스스로 조기회니 직장팀이니 해서 곳곳에서 볼을 찬다. 그 결과 군부 클럽대항전인 경북리그 축구대회에서는 지금도 영해와 강구지역 클럽이 우승을 도맡는다. 지난해 경북리그 우승자도 영해클럽이었다. 영덕의 선수층이 변함없이 두텁다는 뜻이다.

출향인들이라고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명절을 맞아 영덕 고향을 찾으면 성묘가 끝나자말자 조그만 운동장들에서 흔히들 한바탕 축구시합을 벌인다. “영덕출신 치고 축구 못하는 사람 못 봤다”는 말은 이런저런 많은 열정들로해서 생겼을 터이다. 영덕사람이 특히 많이 나가 산다는 포항에서 그 말은 더욱 실감나게 유통된다. 포항서 열리는 크고 작은 조기회·클럽대항 축구대회 때마다 영덕 출신들이 발군의 실력을 뽐내는 것이다.

강구 출신인 라영조(53·사업)씨는 “영덕 출신들은 축구실력이 좋다보니 전국 어느 곳에 가더라도 조기회나 축구클럽으로부터 스카우트 대상이 된다”며 “정식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하지 않아도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 만만찮다”고 했다.

이렇게 축구사랑이 유별나다 보니 영덕군민들은 경북도민체전 때마다 유독 축구 종목에만 집착하는 특이한 풍경을 시연하기도 한다. 다른 종목은 다 져주더라도 축구만큼은 반드시 우승해야 만사가 편하다는 얘기다. 만에 하나 고등부·일반부 축구가 모두 패하면 영덕은 초상집 분위기다. 체육회 간부나 축구협회장은 아예 보따리를 싸야 했다. 영덕군체육회 최길동(56) 사무국장은 “매년 도민체전 때마다 축구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한 두번 아니다”며 “다른 종목은 몰라도 만에 하나 축구가 예선 탈락이라도 하면 아예 도망갈 생각부터 해야 했다”고 지난 애환을 전했다.

축구만큼은 남에게 우승을 넘겨줄 수 없다는 선민의식이 저렇게 대단하다는 얘기다. 그 결과 역대 도민체전에서 영덕군 일반부 축구는 무려 14회 연속 우승을 했다. 또 그런 열정을 반영해 군청에서도 뒷바라지에 매우 적극적이다. 특히 김병목 군수의 축구사랑은 빼놓을 수 없다. 김 군수는 영덕의 축구 인프라 확장을 위해 군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군 단위에서는 드물게 영덕이 전국 중등축구대회까지 유치한 것도 김 군수의 이런 축구열정 덕분이다. 군청 공무원들도 이번 대회를 위해 축구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경남 남해스포츠파크와 전남 강진체육센터를 벤치마킹 하는 등 밤낮으로 뛰었다.

영덕사람들의 축구사랑은 이렇게 스스로 뛰는 것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영덕 출신 축구인들이 출장하는 경기에는 어디 없이 쫓아다닌다. 신태용 현 성남일화 감독, 박태하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김진규 전 FC서울 선수들이 그렇게 고향 갤러리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영해 출신인 신 감독이 성남일화 선수로 뛰면서 포항스틸러스와 경기를 할 때면 고향 주민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대거 원정응원을 다녔다. 강구 출신인 박 수석코치가 포항스틸러스 선수였을 때는 강구 주민들이 스틸야드를 찾아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벌였다. 강구 출신인 김진규 선수가 FC서울에서 뛸 때 포항 스틸야드 관중석 4분에 1은 영덕사람들로 찬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성남일화의 신 감독이 포항스틸러스와 경기를 하는 날이면 강구·영해 주민들이 포항으로 몰려든다.

박태하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와 박지호 성남일화 여자축구 감독이 포항스틸러스 선수이던 시절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기자가 스포츠부문을 맡아 있던 1997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로 현지 취재를 간 적 있었다. 포항스틸러스가 아시안클럽대항 우승권을 놓고 사우디 알힐랄팀과 그쪽 킹파트 구장서 원정 1차전 경기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경기장은 섭씨 35도가 넘는 무더위에다 산소까지 부족해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자 당시 박성화 포항스틸러스 감독이 체력 좋은 박태하와 박지호를 선발로 투입했다. 이들은 강구 해안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심폐기능이 좋다는 얘기였다.

다른 선수들은 전반전을 끝내기도 전에 헉헉대며 고통을 호소했다. 하나 강구 출신 두 선수는 펄펄 날았다. 별명이 `돌고래`였던 박태하는 정말 돌고래처럼 솟구치며 상대팀 장신들과 헤딩 경합을 벌였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장면이었다. 박지호는 특별히 빠르지 않았지만 특유의 끈기로 전후반 내내 상대팀을 괴롭혔다. 그날 포항은 0대 1로 패했다. 하지만 박성화 감독은 “강구 촌놈들 체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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