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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의 진화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8-18 23:38 게재일 2011-08-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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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창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70년대 이야기다. 이웃에 살림이 어려운 집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에 화려한 무늬가 있는 이불을 가지고 장사꾼이 나타났다. 장사꾼은 그 오두막집 마당에 이불을 가지고 어슬렁거렸다. 이웃 아저씨가 그 이불 얼마 하느냐고 물었다. 장사꾼은 그건 물어서 뭐하느냐며 값을 말하지 않았다. 당신은 얼마라고 해도 살 수 없다고 했다. 형편도 안 되면서 묻기는 왜 묻느냐고 했다. 이웃 아저씨는 화를 내면서 다시 값을 물었다. 이불 한 채에 만원인데 당신은 5천원 해도 못 살터인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했다. 이웃 아저씨는 그럼 5천원에 살터이니 가진 이불 모두 내놓으라고 했다. 장사꾼은 당황했다. 이웃 아저씨는 이장 댁에 가서 돈을 빌려 그 이불을 모두 샀다. 장사꾼이 떠난 다음에 안 일이지만 그 이불은 시중에서 천 원에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건지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걸 건지기 위한 회사를 차리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건지기만 하면 대박이 나는 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했고 그는 그 투자금을 거둬 유유히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꼼수의 고전에 속하는 것들이다. 우리사회의 꼼수는 나날이 발전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지경으로 가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보이스 피싱 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휴대전화를 걸어서 당신의 예금계좌가 해킹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 빨리 안전한 계좌로 돈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친절한 분의 지시에 따라 현금인출기 앞에 가서 그가 일러주는 대로 번호를 눌렀다. 500만원을 고스란히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송금한 것이다. 그의 말씨가 너무도 친절하고 미더워서 사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도 조심하라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보이스 피싱을 당한 그분은 누구라고 이름만 말하면 알 수 있는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다.

보다 진화된 꼼수의 세계는 몸을 수고로이 해서도 안 되며 법을 위반해서도 안 된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꼼수에 임해야 한다. 큰돈은 주식 시장에 있으니까 주식을 통해야만 큰돈을 벌 수 있다. 상장되었으나 전망이 없어 곧 망하는 회사를 인수한다. 회사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꾼다. 이 화사의 이름으로 아프리카나 중동의 다이아몬드나 석유 채굴권 MOU를 체결한다. 이거 어려울 것 같지만 어렵지 않다. MOU는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과 달라서 반드시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거의 석유가 나올 가망이 없는 광구의 계발에 동참해도 된다는 양해각서 같은 것이다. 지하자원 채굴 MOU를 채결했다는 소문을 증권가에 흘린다. 그냥 흘리기보다 언론에 보도되게 하면 더 효과적이다. 주가가 하늘 모르고 올라간다. 그 때 팔고 튀면 큰돈 벌 수 있다. 실제로 자원개발을 명목으로 내세운 영어 이름을 가진 회사가 우리나라에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공영방송이 권력에 장악되어 공정성을 잃었다. 그래서 인터넷 정보에 의지하게 된다.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하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아고라 등의 사이트에는 어버이연합 수준의 글들로 도배되어 있다. 이른바 알바라고 하는 젊은이들이 고용되어 여러 개의 아이디로 댓글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뿐만 아니라 인터넷 매체도 꼼수에 장악되었다. 인터넷 정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아는 우리사회의 꼼수의 수준이다. 옛말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는 놈 위에 올라탄 놈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사회의 꼼수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꼼수 부리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이들은 늘 꼼수에 당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인천공항 매각에 대한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인천공항은 100% 국가가 주식을 보유한 공기업이다. 게다가 나라의 관문이며 국가 기간사업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은 세계 최우수 공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리기도 한다. 이걸 팔게 되면 공항과 주변시설 이용료가 몇 배 오르게 마련이다. 다른 나라의 예가 그렇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알을 꺼내는 격이라고 비유하는 이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국민주를 발행하여 국민에게 이득이 돌아가게 한다, 주변 시설 공사 자금을 마련하려고 한다,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위해서다 등을 내세운다. 이거 모두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인천공항 매각 계획은 뭔가 석연치 않다. 우리사회에 워낙 꼼수가 진화해서일까. 그럴 리가 없겠지만 여기에도 무슨 꼼수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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