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지수의 년도별 추이를 보면 민주화 이후 나라가 다소 깨끗해지다가 97년의 외환위기 무렵부터 2000년까지 부패가 심화되어 정점에 이르렀고, 그 후 2008년까지 점차 청렴해지던 나라가 2008년 이후 다시 부패정도가 깊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부패는 경제력의 상승에 반비례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 수준에서 순환되는 덫에 걸려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 불안의 근본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의 지속적 발전보다 급전직하로 후진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까닭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축은행사태, 일부 중앙정부 고위공직자의 룸살롱 접대, 예비역 고위 장성들의 스파이 행각 등은 우리 사회의 부패가 국가존망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음을 경고하는 현상들이다. 부패의 순환구조가 이처럼 국가지도부 전체로 확산되면서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체제위기를 오싹하게 느낄 지경이다.
저축은행 사태는 지난 1월에 사건이 불거졌는데도 아직도 그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체 이를 밝혀야 할 금감원, 감사원, 검찰, 국회가 모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혈세로 조성되는 거액의 공적자금으로 이들 은행을 구조조정하겠다는 대책을 세우고 있어 모든 피해를 국민들만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사정기관이나 여야를 막론한 의회가 왜 저축은행사태에 무기력한 것인가는 그동안의 수사와 논란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저축은행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란 짐작만 할 따름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신 이상으로 의회민주주의의에 대한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는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을 관치체제로 기울게 함으로써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산하기관의 보고를 접대부를 앉힌 룸살롱에서 받았다는 중앙정부 고위관료의 부패 행태는 이미 조선조의 변사또를 방불케 하고, 고위 장성들이 군사기밀을 외국회사에 팔아 치부를 했다는 뉴스는 춘추전국시대의 망국사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 충격을 준다.
그래서 우리가 선진국대열에 진입하고 있다는 희망의 소리는 아직도 미덥지 않다. 70년대에 후진국 경제에 비전을 제시했던 군나르 뮈르달의 저서 `아시아의 드라마`에서 오히려 경종을 받게 된다. 이 책에서 “부패의 일소는 언제나 군사정권의 등장을 정당화하는 주요한 구실로 내세워져 왔다. 그리고 새로운 정권이 부패일소에 실패하는 경우에는 그 실패가 또 하나의 어떤 류의 반란에 근거를 두게 되는 것이다” 쿠테타의 악순환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국민은 자력으로 민주국가를 수립한 국민이다. 군부의 쿠데타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지난 광우병 촛불처럼 광장의 저항으로 우리 사회를 다시 혼란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엄청난 부패는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이를 청산하지 못하면 우리가 쌓아온 경제적 정치적 성공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국민 각자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방법은 내년 양대 선거를 통해 부패 정치인을 심판하는 것이다. 각 정당이 공천에서 청렴도를 어느 정도의 잣대로 삼았는지를 면밀히 따져서 정당에 대한 지지도를 결정하는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의 경우도 비리공무원의 원내 진출은 법률적 기준에서 문제가 없다 해도 철저히 봉쇄해야 하고 기성정치인의 경우도 원내 활동을 통해 부패와 관련한 발언과 행위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가려내야 한다. 청렴도를 기준으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정부내 공직자의 진정한 쇄신을 이룩하는 것이 부패의 고리를 끊는 길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