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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은 너무 한심하다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8-08 23:59 게재일 2011-08-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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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지금, 서울은 너무 한심하다. 이렇게 말하면, 대다수는 이번 집중호우 때 일어난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의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나 강물로 변모한 강남구의 간선도로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아니다. 이달 1일에 발의된 `무상급식 찬반투표`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똑똑하고 잘난 서울시민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시장은 한나라당 오세훈을 아슬아슬하게 당선시키고 서울시의원에는 민주당 등 야당 후보를 왕창 뽑아줬으며, 교육감에는 전교조가 총력으로 밀어준 곽노현을 택했다. 그런 다음에 서울은 한국사회를 `전면적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몰아갔다. 그때부터 한국사회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점심 주는 일`로 또다시 양분되었다. 그 대립 양상은 4대강 사업 찬반과 거의 흡사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전면적 무상급식에 찬성하고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전면적 무상급식에 반대했다. 그것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갈라진 한국사회의 진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신념이 십만 명의 군대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서울의 `학교 점심 주기 사태`도 그 꼴이나 다름없다.

이념이 만든 신념에는 강력한 흑백논리가 작동하는 법이다. 선이냐 악이냐, 승리냐 패배냐. 이것이 그 신념의 가치 척도다. 전쟁하는 군율의 수준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도 `성공과 좌절`이라는 저서에서 “중도가 설 땅은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다. 그 신념의 세계는 중도가 들어설 여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중도는 한낱 회색분자요 기회주의자이다. 중도는 당연히 숙청대상 명단에 올라간다.

그러므로 이념이 만든 신념에 갇힌 사람들은 대화하고 또 대화해 마침내 양보와 타협에 도달하는, 그 진정한 민주주의의 소통에 나설 수 없다. 말로는 민중이나 서민을 극진히 받들어도 자신의 삶은 이미 그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로는 민주주의를 최고 가치로 받들어도 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인 `대화를 통한 양보와 타협의 정신`은 이미 자신의 신념이 거부해 버린다. 물론 그 신념은, 자신만 모를 뿐이지, 자신의 불행한 감옥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전면적 무상급식 실시`라는 표현에서 `전면적`이라는 단어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2011년부터 초등학생에게 전면적 무상급식을 실시하지만 중학생의 경우에는 2011년부터 1학년에게 전면적 무상급식을 실시하여 해마다 2학년, 3학년에게 `단계적`으로 전면적 무상급식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니까 `전면적`이 아니라 `단계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로스쿨의 `법학박사`다운 논리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한국사회를 둘로 갈라놓은 무상급식의 `전면적이냐 단계적이냐`라는 문제의 본질은 `하위 소득계층 자녀에게 먼저 무상급식을 실시한 다음에 연차적으로 상위 소득계층 자녀에게로 무상급식을 확대해 나가는 방식`의 `단계적`이냐, 아니면 소득계층 구분 없이 모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전면적`이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아이들 학교 점심 문제로 주민투표를 발의하기 전날, 미국에서는 여야가 극적인 타협을 이룩했다.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시한을 앞두고 도저히 타협하지 않을 것처럼 팽팽히 맞서고 있던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화를 통한 양보와 타협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진정한 대화를 위하여 `영혼이 깃든 정성`을 기울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민주, 공화당 의회 지도자들이 재정적자를 감축하고 디폴트를 막기 위한 방안에 합의했다”는 성명을 발표한 날은 현지시간 7월31일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에 미국 상원은 8월의 “의회 휴회가 끝난 직후 한·미FTA 관련 3개 이행법안을 처리하는 `추진계획`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역시 여야의 대화를 통한 양보와 타협의 산물이었다.

서울시의회의 거의 모든 의원들은 여의도의 국회의원들로부터 정당공천을 받아서 그보다 끗발이 훨씬 떨어지는 금빛 배지를 가슴에 박게 되었다. 그들을 공천한 국회의원들이 대화를 통한 양보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무시해온 사정을 감안해보면, 그 아래에 불과한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그것을 존중하고 실천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렇다면 오세훈 서울시장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어떠한가? 하나는 고려대 법대를 나오 고 또 하나는 미국 로스쿨을 나왔다. 법정의 뒷동네에선 `주고받기` 타협이 곧잘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건만, 서로가 법을 너무 잘 알아서 `가처분` 따위의 소송이나 제기하면서 대화도 양보도 타협도 할 줄 모른단 말인가? 그것은 법치가 아니다. 잠재적 폭력성을 키우는 `잘못된 신념의 발로`로서 민주주의의 성장을 저해하는 치졸한 충돌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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