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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손가락 그리고 소금꽃 나무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7-20 23:20 게재일 2011-07-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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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포항여성회장
늦은 밤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언제나 불길하다.

나른한 목소리 뒤에 이어진 긴박한 물음표는 불길한 사건과 사고를 예감케 한다.

예감은 엇나가지 않았고, 비가 쏟아져 내리던 그날 밤 엄마는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언제 배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는 충주댐을 충주에 살면서도 실물보다 교과서로 먼저 대면했다. 여고시절 오랜 기간 운영하던 아버지의 국수공장이 문을 닫았다. 국수 공장을 접은 후 이 일 저 일을 전전긍긍하다 수자원공사에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된 아버지의 출근지는 교과서로 대면했던 충주댐이었다. 댐의 규모가 워낙 거대한지라 남한강 이남지역의 홍수 조절에 충주댐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는 그 역할을 소흘히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와 함께 댐으로 출근한 아버지는 밤이 늦도록 퇴근할 수 없었다. 어떤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날 밤 아버지는 약지와 새끼손가락 마디가 한마디씩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일하다 다친 거니까 산재 보상 받을 수 있을 거야~”

병원치료를 마친 후 아버지는 산재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몇 개월 아니 내가 느끼기엔 1년도 더 된 듯했지만 그렇게 자신의 재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던 아버지는 급기야 산재보상금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응원해주어야 마땅했겠으나, 아버지의 잘린 손가락과 치열한 싸움 끝에 얻어낸 산재보상 결정은 내게 있어 자랑스러움보다 수치스러움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철없는 여고생의 편협한 시각이 작동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 대한 왜곡된 편견도 한 몫 했으리라. 지난날 아버지를 향했던 나의 수치스러움에 오늘 나는 수치심을 경험한다. 이제 권리 위에 잠자지 않았던 아버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2011년 현재 우리 사회는 갈등에 대한 소통과 합리적인 조정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는 국민들의 요구를 듣지 않으며, 기업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자본의 이해에 충실히 작동하며, 공권력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권력과 자본의 이해에 충실히 작동한다. 하여 국민을 비롯한 소외된 이들의 요구? 공공의 이익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극한의 위험을 감내해야만 하는 위험한 사회가 도래했다. 적어도 20여년전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산업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극한의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았었다.

지난 해 4대강 사업의 저지를 위해 크레인과 보 위에 올라가 장시간 농성을 벌이던 환경운동가들의 모습이 스친다. 대량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소금꽃나무 김진숙씨는 7월 9일이면 농성 185일째를 맞이한다. 약 35m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좁은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용접공 김진숙씨가 185일을 넘도록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중에 있다. 그녀의 외로운 싸움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부산의 영도로 향했다고 한다. 쏟아지는 장맛비를 맞으며 참으로 많은 이들이 희망버스에 올랐단다. 전국에서 달려온 이들에게 김진숙씨는 그들이 소외된 이들을 향한 희망이 될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이포보, 함안보, 부산 영도 85호 크레인”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국가 및 자본의 현재 모습을 상징한다. 적어도 아찔하도록 좁고 높은 보나 크레인 위에 올라가지 않고서는 어떠한 요구도 `찍`소리가 될 수 없는 소통 불능의 위험사회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7월9일 부산에 모인 190대에 가까운 희망버스는 단지 한 여성노동자와 단위노조의 싸움을 지원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위험한 우리 사회에 시민들 스스로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힘 있는 이, 돈 있는 이” 그 희망 행렬의 의미를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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