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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苦痛)과 고행의 의미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7-15 23:04 게재일 2011-07-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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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
사람이 햇빛 속에서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그림자가 동반된다. 그와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데에도 항상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과 고통이다. 이 두 가지는 마음 속에서 갈등을 하면서 상존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을 예로 들어보아도 극우적인 신의 사랑에서부터, 인간적인 사랑을 거쳐서, 극좌적인 만나기를 꺼리는 관계까지,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즉 사회를 살아가는데 우리는 다양한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 그 중 사랑은 순간순간 나타날 뿐이지만, 고통은 시도 때도 없이 바지가랑이를 잡고서 동행하자고 안달을 한다.

고통은 인생에서 가시나 씀바귀와 같다. 몸을 찔러 아프게 하기도 하고, 씹으면 입안을 쓰게 만들어 찌푸린 얼굴이 되게 한다. 인생의 킬러이다. 고통 육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세계에서도 고통은 몸에서 힘을 빼앗고, 지쳐서 눕게 만들어 버린다. 고통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의 제일 명당자리에 앉아서, 하하 큰 소리로 우리를 놀린다. 육체에는 고통이 통증으로 나타난다. 육체의 통증은 두뇌의 산물이다. 뇌의 어느 한 부위가 통증을 담당한다. 통증은 약물로서 줄일 수 있다. 때로는 훈련으로도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은 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단 당한 다리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없어진 다리부위에서도 통증을 상당 기간 느낀다. 그리고 자기는 다리가 있는 줄 안다. 이것도 약 6개월간의 훈련을 받으면, 뇌의 학습효과로 정상생활이 가능하다. 육체의 통증은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제압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에도 두 번 당하기 싫은 아픈 고통이 많다. 예를 들어 인간은 절절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될 때에도 고통을 느낀다. 연인이나 가족을 영원히 이별해야 할 때, 그의 괴로운 마음은 거의 물리적 고통에 맞먹는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통은 성공, 희망이나 행복 등, 인간이 좋아하는 것 안에서, 둥지를 틀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하고 밝은 것을 좋아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고통은 해악을 주려고, 수시로 머리를 내 민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에 넌더리를 낸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리 쓴 맛이 나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어느 현자는 인생을 고해라고 하지 않던가! 삶에서 성공은 간혹 보이는 무지개일 뿐, 실패와 좌절이 곳곳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이때 우리는 낙담, 괴로움, 외로움, 쓸쓸함, 좌절, 흥분 등, 부정적인 단어로 가슴을 메운다.

진리는 멀고도 험난한 고통의 길을 통해야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통은 인간에게 삶의 스승이며, 앞길을 제시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고행 과정의 맨 뒷부분에서야 비로소, 인간은 인생살이 교훈의 손짓을 체험할 수 있다. 고행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은 신앙의 형태를 띄고 있다. 처음으로 추구를 시작하는 자는 오직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무조건 알게 해 달라고 조른다. 떼를 쓴다. 그 다음 단계로는 떼를 쓰면서도 답이 보이지 않기에, 이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애써 정진과 수행을 감당한다. 즉 쉼 없이 진리를 검증하는 단계(고행)이다.

그 다음 단계로 그는 고행의 결과, 깨달음을 얻고, 진리에 머무른다.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바라보는 신앙형태를 갖는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조금 깨달았다고 해서, 진리에 도통한 듯이 처신한다. 그래서 그는 어중간하게 그곳에 머무르면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만다. 고통을 직시하고 계속 고행을 수행해야, 비로소 해답을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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