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한국식암각화 발상지 `칠포리 암각화`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6-22 20:40 게재일 2011-06-22 17면
스크랩버튼

영일만은 선사시대 암각화의 본향

그간 영일만이라는 지역은 우리나라의 선사문화를 말할 때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주목되지는 못하였다. 그 원인으로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영일만일대의 선사문화가 포항제철과 같은 현대의 거대산업문화에 가려서 제빛을 발하지 못하였다는 측면이 있다. 첨단을 걷는 산업문화가 `오래되고 낡은` 선사시대의 문화현상을 가리면서 우리 눈에 선 듯 보이지 않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칠포리 암각화역시 우리나라 암각화 중에서 그렇게 이른 시기에 발견된 유적도 아니다. 더욱이 이 구조적 형태의 암각화가 포항만의 고유한 표현물이 아니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칠포리 암각화의 발견이 한국 암각화연구에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앞서 언급된 것과 같이 그 어느 지역, 어느 유적보다도 크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고장 영일만 일대에서 선사시대 암각화는 칠포리에서만 조사된 것은 아니다. 칠포리와 이웃하는 청하면 신흥리 오줌바위(일명 화전바위)에서 대규모의 별자리형암각화가 조사된 적 있으며, 이미 1985년에는 기계면 인비리의 한 고인돌 개석에서 석검을 새긴 암각화가 발견된 적도 있다. 여기에 구룡포 눌태리 윷판재의 윷판형암각화를 비롯하여, 최근 2002년에 와서 동해면 석리에서 인면형 암각화가 조사되었고, 2006년에는 흥해읍 대련리에서 사람표현물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 기계면 구지리의 작은 고인돌에서 새로운 인면암각화가 조사된 적도 있다. 이외에도 윷판형암각화를 위시한 특이한 구성의 곡강리 고인돌의 선각 바위구멍을 비롯하여 많은 바위구멍유적은 선사시대 영일만의 문화가 얼마나 폭넓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는가 하는 사실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그만큼 이 고장 영일만은 한반도 선사시대의 특별한 곳으로서 가히 선사문화의 중심, 암각화의 본향이라고 불러 지나침이 없는 곳이다.

여기서 학술대회의 이모저모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칠포리 암각화발견 20주년기념 국제학술대회 `영일만 선사시대와 칠포리 암각화`는 6월11일에서 12일 이틀간에 걸쳐서 실시되었다.`칠포리를 비롯한 영일만 일대 암각화의 의의와 상징세계를 규명하고, 나아가서 암각화의 보존과 활용측면에서 암각화자료에 대한 문화콘텐츠로서의 활용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기회로서 학술대회를 기획하였다`는 한국암각화학회 서영대(인하대) 회장의 말처럼, 학술대회는 전반적으로 암각화의 고고 환경적 측면, 암각화의 상징과 분석측면, 그리고 보존과 활용측면에서 본 암각화라는 3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

세부 주제발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강봉원(경주대) 교수는 칠포리 암각화문화의 성립이 포항·영일만 지역의 토착 주민들의 내재적·독자적인 문화발전의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하여 독자성을 주장하였으며, 윤명철(동국대) 교수는 선사시대로부터 환 동해문화권역에서는 매우 활발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는데, 그 해로 상에 영일만문화와 울산만문화가 있으며, 칠포리 암각화문화라는 것은 결국 영일만을 중심으로 해서 교류와 이주, 전파에 의한 문화적 결정체라는 사실을 그간의 동해해로의 검토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칠포리 암각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환경적 측면에서 영일만에 산재한 바위구멍유적의 일부를 별자리형 바위구멍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영일만의 천문사상을 분석한 김일권(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의 발표를 포함하여 1부는 구성되었다.

2부 주제발표에서는 먼저 송화섭(전주대) 교수의 연구발표로서 칠포리 암각화의 성립과 그 배경을 한반도 남부에서 올라오는 고인돌의 전파루트를 통하여 추적하고 있으며, 두 번째 주제발표를 한 필자는 칠포리 암각화의 조형성을 중심으로 하여 그 변화상과 함께, 변화를 초래한 배경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계속>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