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대구·경북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이어 과학벨트 입지마저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결정되자 `TK지역 역차별`이라며 크게 반발하는 한편 심지어 `방폐장 반납추진`등 초강경 발언까지 쏟아지고 있다.
이같은 지역민심 이반현상은 사실 과학벨트 유치릉 위한 지자체간 경쟁이 불붙으면서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 경북도가 과학벨트를 유치하기 위해 준비한 과정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게 진실이다. 준비내용도 매우 취약했다. 단적인 예를 들면 경북도는 지난해 12월 경북도의회에 과학벨트 홍보예산으로 2억원을 편성해 도의회에 올렸다가 “국책사업 유치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 데, 이정도 예산으로 일이 되겠느냐”는 모 도의원의 호통과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과학벨트 홍보예산을 10억원으로 늘려서 재편성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그 당시 경북도 관계자는 언제 과학벨트 입지가 선정되는 지 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 당시만해도 과학벨트 유치는 그리 중요한 관심사도 아니었던 것.
그러다가 이 대통령이 지난 2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다녀온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과학벨트는 원점에서 재검토해 과학자들이 심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자 뒤늦게 대구·경북·울산이 과학벨트를 유치하겠다며 홍보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지역 정치권과 김범일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지자체장들은 그 당시 과학벨트 유치에 목 매달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대통령 공약이자 대구·경북지역의 재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으로 부각됐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정부가 백지화하는 바람에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얼굴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처럼 공정한 절차를 거쳐 과학벨트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굳게 약속한 정부를 믿을 수 없게 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더욱 확산됐다. 지난 14일 몇몇 언론에서 `정부가 과학벨트 입지를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확정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탈락한 다른 지역에서는 반발여론이 들불 퍼지듯 급속도로 확산됐다.
특정 지역과 관련된 국책사업을 결정하려면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에 입각, 투명한 심사과정을 거쳐서 해야한다. 동시에 심사과정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나 여론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과학벨트 입지선정 과정은 그런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대구·경북지역이 정부의 과학벨트 입지선정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정부의 서툰 일처리에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서운한 마음을 달랠 방책이 있는 지 모색해야한다. 그게 민주주의요, 국민을 위한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