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학생부 조작은 우리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다. 거짓으로라도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비교육적 행태는 개탄할만한 일이다.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성적으로만 하지 않고 역량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평가하려는데 초점이 있다. 미국에서 도입된 대입 형태이지만 도입 후 3~4년이 흐른 지금은 `한국형 입학사정관제`라는 명칭이 생겨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 3월 말 한동대학교에서 열린 입학사정관제 대입설명회에 나온 대교협 관계자는 대학 모집인원의 10.8%가 입학사정관제에 해당돼 소수로 미미하게 보이지만 서류평가의 정성평가를 입학사정관이 한다는 측면에서 모집인원의 62%가까이 늘어난 수시전형이 바로 입학사정관제가 아니겠는가라는 반문을 했다. 또한 향후 10년간 계속 정부가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대학에 지원을 약속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입학사정관제가 계속 확대돼 갈 것임을 시사했다. 지금 학교현장은 벌집을 쑤신 듯 복잡하고 분주한 모습이다. 학생들의 역량과 잠재력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맞춰 있는 그대로 학생들의 결과를 판단하면 되지만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해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을 계획하고 이른바 스펙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을 구성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가 가져온 이 교육혁명은 필요에 의한 당연한 시대적 선택인 것 같다.
이른바 `진로교육`이라고 말해지는 새로운 교육과정은 현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적용돼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이 먼저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에 맞춘 자기주도적학습을 계획 실천하고 그 결과를 들고 대학에 진학하는 교육, 자신의 꿈이 꼭 대학진학이 아니라 직업을 바로 갖는 진로선택이라면 그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이끌어주는 교육, 미래사회에 대한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꿈으로 보여주는 교육 이런 것이 `진로교육`이라면 현재 꼭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오히려 지금은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기여입학제`나 `고교등급제`, `대학별고사제` 등 노무현정부가 지켜왔던 3불정책을 교묘히 무너뜨리고 특목고나 외고를 위한 입시제도가 아닌가라는 혐의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입학사정관제의 투명성 제고`라는 주제가 바로 이 부분의 핵심인데 대학교육협의회는 지속적으로 투명성을 높여나간다는 방침인데다 올해 이 때문에 조사 후 지원금을 반환하는 징계를 받은 대학이 속출하기도 했다. 입학사정관제는 새로운 대학입시제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대입제도가 이처럼 학교현장을 표면적으로라도 바꿔나가는 일도 드물었거니와 교육의 중심과 기본 틀을 바꾼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학교 밖에서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 학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입학사정관제를 근간으로한 뜨거운 교육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