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은 여름 내내 지친 몸을 맛과 색, 향은 물론 건강까지 추슬러주는 차(茶)로 달래보는 게 어떨까.
중국에서 시작된 차는 세계 170여 나라에서 하루에 20억 잔의 차를 마신다고 한다. 인간의 기호 식품으로 차(茶)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것도 없다.
차는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수단이어서 첫인사의 대부분은 차 한잔 하자다. 해석이 다를 수도 있지만 서양의 티타임도 그렇다.
다관에서 우러나온 차는 첫째 둘째 잔은 향, 색이 너무 조화롭고 맛있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맛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첫 번째 우러나온 잔만 움켜쥐고 있을 수는 없으니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사는 반반씩이니 좋은 일에만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가 찻잔에 녹아 있다. 우리 삶에서 즐거운 시간이 있으면 그걸 영원히 붙잡을 방법이 있는가. 때가 되면 무엇이든 놓아버려야 하는 게 생의 이치다.
서양 문화는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지만 노장(莊) 사상에서 보는 동양 정신은 자연 속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다. 차 마시는 것이 그렇다. 차(茶)를 파자해 보면 풀과 나무들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니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
일본의 차는 형식에 너무 얽매여 있다. 찻물을 길어오고 숯불을 피우는 과정하며 다구를 만지는 차인의 자태도 곱기도 하지만 잘 차려입은 기생 같기도 하다.
우리는 소박함이 절로 뿜어 나온다.
어루만지고 싶은 게 한국의 차와 차상에 놓인 찻잔이다. 화경청적(化敬淸寂)이다. 상대를 공경하고 고요함 속에 몸을 바로 갖추는 자세는 차에서 익히기가 가장 쉽다.
선다(禪茶)의 정신세계는 신라 승 무상이 중국에서 처음 일으켜 중국의 화두선(話頭禪) 세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는가 하면 한국과 일본 불교에도 바로 영향을 주었다.
차가 정신을 맑히고 시간을 한가롭게 쓰는 여유를 갖게 한데서 출발되어 널리 보급됐다.
정좌를 하고 한 모금 차를 넘기면서 세속에 얽힌 번뇌를 끊어버리고 무념(無念)에 들어간다. 복잡한 생각 잡념을 털어 버리는 것이 선다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된다. 선과 차가 둘이 아닌 경지로 가려면 고된 수행이 뒷받침되면 더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여유롭게 변한다.
책과 차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잔 차로 목을 축이고 두잔 차로 고민을 없앤다. 석 잔 차로 아무것도 없는 뱃속을 찾으면 오직 책 5천 권 뿐이다. 고대 중국 현인의 말이다. 책을 읽고서는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뱃속 깊숙하게 간직한다는 비유다. 추사 김정희도 그렇게 말했다.
정신건강이 아닌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차가 으뜸이다. 우리 몸속의 염도(땀 속의 염분 비율은 0.2-3%)는 0.9%쯤 되나 바닷물은 3%다.
우리 식생활은 비교적 짜게 먹는다. 된장 쌈과 풋고추 찍어 먹고 국까지 마시면 위 속의 염도는 바닷물과 비슷해지니 1.8리터의 차를 마시면 몸속의 염분을 그만큼 희석시키니 건강에 좋다. 감기를 쫓는데도 차의 효험이 크다.
녹차가 아니어도 좋다. 술자리가 심할 때는 구기자차를 진하게, 만성 피로에는 황기나 대추차로 다스리면 된다.
소란스런 마음을 내려놓으면 다선일미다. 마음이 들어 있지 않으면 선다의 정신세계로 다가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