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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조크

최진환 기자
등록일 2009-06-25 11:19 게재일 2009-06-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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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결코 용서 못 할 두 개의 죄악이 있다고 한다. 신이 내려준 남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는 살인과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자살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자살이 미화되고 고무되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죽음이 미학이라도 되는 양, 수많은 젊은 연예인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나라의 최고 자리에 있었던 사람마저도 목숨을 헌신짝같이 버렸다.


모방 자살도 늘고 있다는 보고다. 이러한 풍조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행태라고 한다. 이 나라의 앞날이 그렇게도 희망이 없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용기 중엔 가장 큰 용기가 죽는 용기라고 했는데 그 용기를 살겠다는 것에 투자한다면 헤쳐나가지 못할 난관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어떤 분은 이러한 병리현상이 한국사회에서 특히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유교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유교의 발원지는 중국이고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유교의 잔재가 사라진 지가 오래란다.


유독 한국에서만 유교의 영향이 아직도 우리 생활 가운데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조금은 이해가 어려운 논리를 편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인들 알겠는가?” 공자의 말이다. 이랬던 그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는 현세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요 사후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조에 들면서 이러한 유교사상이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전파되면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생전에 폼 나게 살다가 이 세상 떠나면 그 후는 내 알바가 아니라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만연했으며, 특히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했던 까닭도 나만 잘살면 된다는 바로 이런 사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세태에서 한 번쯤은 새겨 봄직도 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사후세계를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것은 신앙 자체가 인간에게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한계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보니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선 인류역사 이래 가장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고, 그 어떤 종교든 죽음을 끝으로 보는 경우도 없다. 또 다른 세계의 시작점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조크도 많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엘 갔다. 거기서 그는 세 가지에 놀랐다고 한다. 첫째 도저히 천국에 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 와 있는 것이고, 둘째 꼭 와야 할 사람이 도통 보이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내가 천국에 왔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남을 위해 숱한 적선을 하고, 늘 반듯하게 살아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사람이어서 마땅히 천국에 있겠거니 했는데 보이지 않으니 지옥에 떨어진 것이 분명하겠고, 오직 자기밖에 모르고, 못된 짓거리에 돈에는 찰거머리 같던 인사가 버젓이 천국에 버티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자신을 돌아보니 도무지 천국에 올 짓을 한 적이 없는데, 막상 천국에 와 있으니 황감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조크도 있다. 천국에 왔더니 너무도 실망하여 지옥엘 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자가 있어, 연유를 물었더니 세상에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녔던 인사들이 몽땅 거기 와있더라는 것이다.


도대체 천국이란 곳이 온통 흉악범 천지라 설마 지옥이 이보다 더할까 보냐며 헷갈리더라는 것이다. 죽음을 기점으로 이편과 저편의 평가가 매우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서 숨겨진 선이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시선은 한계가 있어 진실을 보기가 어렵지만 신의 잣대는 끝이 없기에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곤란한 평가가 나온다는 것을 은유한 조크다.


죽음에도 분명히 질이 있다. 남을 위하거나 세상의 공의를 위해 맞는 의로운 죽음은 존경을 받지만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죽는 것은 개죽음일 뿐이다. 생명 그 자체도 중요하여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죽음 후에 있을 세상의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저 세상에서 받을 형벌을 어찌 감당하려고….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하나 선과 악을 구분 짓는 데는 실수가 많다. 때문에 무엇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잘 살펴서 실수 없이 살라는 충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개죽음만큼 비참한 것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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