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이 열린 집권여당의 내홍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친박근혜계와 친이명박계의 계파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4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는 쇄신안을 놓고 백가쟁명식 토론이 이루어진데다, 계파 간 득실관계에 따른 발언이 주를 이루면서 결과를 도출할 수 없는 난상토론으로 이어졌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된 당 지도부의 용퇴를 비롯해 조기 전당대회 개최 문제 등 여권 쇄신안에 대해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간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하지만 청와대와 내각의 대대적인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친이·친박계 의원, 또는 초선이나 중진의원 할 것 없이 대다수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인적쇄신폭은 조각 수준의 전면 개각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연찬회에는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등 당 핵심 인사들이 모두 불참한데다 친이계 소장파의 일방적인 조기 전대론만 불거져 알맹이 없는 난상토론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 쇄신특위의 쇄신안의 방법론을 놓고 친이ㆍ친박 간 계파 색채가 뚜렷했다.
친이는 당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지도부 사퇴와 함께 조기전대 찬성론을 펼친 반면, 친박은 쇄신 명분에 동감하면서도 조기 전대보다 국정쇄신론에 무게중심을 뒀다.
친이계인 김용태 의원은 “절박감과 위기감이 팽배한 만큼 당과 정부ㆍ대통령은 이에 버금가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그 핵심은 자기 희생”이라면서 “최소한 당이 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당 지도부 용퇴’를 제기했다.
전여옥 의원 역시, “정당의 핵심은 밟히면 꿈틀거리는 것이다. 살아있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당이 말기암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서다. 대수술을 하자”며 “가장 나쁜 선택이 이대로 있는 것이다. 말기암 1기로 가는데 이대로 있는 게 과연 집권여당의 모습인가. 조기 전대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비대위라도 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친박계 이성헌 의원은 “전당대회를 통해서 사람을 바꾼다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면서 “집권당이 집권당 역할을 못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국정쇄신론을 강조했다.
최경환 의원도 “쇄신위가 화합을 하고 주류 책임론을 얘기한다는 건 친이가 책임지고 가겠다는 건데 조기전대를 내세우는 것은 이재오 전 최고가 나오려는 꼼수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 아니냐”고 진정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다만, 중립 성향의 일부 의원들은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적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동시에 청와대 일부 참모들이 자신들의 ‘자리 보전’을 위해 순수한 뜻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친이계 초선의원은 “청와대 일부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면서 “당에서 분출되는 충정어린 쇄신의 의미를 일부 청와대 참모들이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연찬회 인사말에서 당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기 위해 자유토론에서 구체적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달라고 당부할 뿐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날 연찬회에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민본 21이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를 맡아 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민본21의 황영철 의원은 전날 민본 21 회원들이 워크숍을 가졌음을 밝히고 “전 대표가 다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한나라당을 청와대와 대등한 위치에서 이끌어야 한다”며 “우리는 박근혜 대표 체제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중요한 것은 이제 당이 쇄신을 통해서 청와대와 대등한 당청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대표로서 청와대와 대등한 위치에서 한나라당을 이끌어 나가고, 그 속에서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동반자로서의 모습을 가져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차명진 의원 역시, “박 전 대표가 계속 뒤에 있으면 박 전 대표를 피해자가 아닌 방관자로 착각하게 된다”며 “박 전 대표는 당이 어려울 때 뒤에 있지 말고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친박계 이정현 의원은 “대통령의 불통, 배제, 독주가 가장 문제”라며 “당을 지키려고 10년 동안 고생했던 사람을 제치고 (이명박) 캠프에 1∼3개월 있었다고 그들을 다 쓰는가. 박 전 대표는 칼 맞고 손이 퉁퉁 붓도록 일했는데 이건 아니다”며 역으로 대통령의 인사 탕평을 주문했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