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허종구 조세심판원장

김진호기자
등록일 2009-06-01 20:04 게재일 2009-06-01
스크랩버튼
지난 해 2월 정부조직개편때 새로 설립된 조세심판원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허종구 조세심판원장. 그는 경북 고령출신으로 세무행정과 세무정책을 골고루 통달한 ‘세무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지난해 정부조직개편때 구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원과 구 행정자치부 지방세심사위원회를 통합해 신설된 국무총리 산하기관이다. 최근 유력한 국세청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허 원장을 만나 고향에 어린 추억과 공직생활에 대한 얘기, 그리고 새롭게 출범한 조세심판원의 현안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고향인 고령에서 지낼 때 추억이 많을 것 같은 데, 기억나는 게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제 고향은 고령군 개진면에 있는 일가 마을로, 산이 마을 삼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남쪽으로 좁게 트인 골짜기를 1㎞쯤 나가면 낙동강과 들이 있는 곳입니다. 저희 선산의 할아버지 묘소에 서면 고향마을과 저수지, 낙동강 그리고 비슬산이 아스라이 내려다 보여 지금도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아 서울 집에서 가끔 보면서 고향과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꿈을 가꿔 왔습니다.

개진초등학교 6년 동안은 봄·가을에는 신작로 길 대신 산을 넘어 등하교 하며 자연을 벗삼아 지낸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기본 인성과 체력은 그때 형성된 것이라 생각해 늘 고향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대구서 보낸 학창시절의 특기나 별명, 에피소드가 있으십니까.

▲시골 초등학교를 나와 대구에서 계성중학교와 대구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는 저희 사촌 형제들이 모두 계성학교를 나와 저도 당연히 계성중학교를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여겨 입학했고, 유서깊은 미션스쿨에서 기독교를 처음 접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대구고에서는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나 일생의 동반자가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고등학교 1∼2학년 때에는 학교 공부보다는 문학청년을 자처하며 학교 도서관의 책을 참 많이 빌려 읽고 소설 등의 습작을 하면서 ‘계단문학회’활동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괴물’이란 별명을 얻어 지금도 즐거이 닉네임으로 쓰고 있습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행정고시를 하고 공직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연세대에 입학한 것은 저의 리버럴한 성향에 맞아서이고,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것은 정치·사회적 관심이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향, 그리고 개인이나 기업보다는 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재학중에 행정고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과목을 가끔 수강하곤 했지만 정치학 과목에도 흥미가 많아 전공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4학년 때는 고시를 몇 달 앞두고도 정치학 졸업논문을 쓰는데만 주력하다가 2차 1개 과목에서 1점 차이로 과락을 받아 평균점수는 합격선을 넘기고도 불합격하는 아쉬움도 있었죠.

그러나 졸업 후 바로 3년 군복무를 마치고 6개월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자 친구들로부터 역시 ‘괴물답다’는 애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든 성공을 위해서는 전력투구해야 된다는 교훈을 깨우쳤습니다.

-세무공무원으로는 특이하게 국세청, 재경부 세제실, 조세심판원, 청와대의 세제·세정·조세심판 등 조세 관련 대부분의 기관 근무경험을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행정고시 합격후 국세청에 배정받아 부산시내 3개 세무서에서 부가가치세·소득세 등 일선 세정을 경험하고 나니, 세제업무 경험을 쌓고 싶어 재무부 세제실에 들어가 10년간을 각종 세금의 입안·법령해석과 국세심판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 후 김영삼 정부 초기 청와대 경제비서실 조세담당 행정관으로서 조세정책 조정업무를 본 후 일선 세정 경험을 더 하고 싶어 국세청으로 나와 이천·반포세무서장과 국세청 본청의 심사·법무·기획예산담당관, 중부지방국세청 조사국장, 본청 개인납세국장을 거쳤습니다. 수구초심이라 할까요, 2007년 재경부 국세심판관으로 옮겨 지난 해 3월 조세심판원 설립과 함께 원장에 임명됐습니다. 저는 평소 세제(입법)·세정(행정)·조세심판(준사법)업무가 상호 연계성을 가지고 좋은 하모니를 이루고, 특히 관리자급 공무원의 인사교류를 많이 해야 세정이 원활하게 잘 수행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아우르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던 게 사실입니다.

-세무공무원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언제입니까?

▲무엇보다 세제·세정·조세심판 등 거의 모든 기관에서 다양한 업무경험을 쌓은 것이 가장 큰 행운이고 보람이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세제실에서 토지초과이득세법 제정 등 토지공개념 정책 입안, 조세연구원 설립, 청와대에서 금융실명제·신경제5개년 계획 수립, 세무서장으로서 최초로 시민들을 위한 세정소식지 발간, 직원 업무성과평가 실시, 최우수 관서로 대통령 표창, 국세청에서 현재의 법무·심사업무와 소득세·부가가치세 행정등의 기틀마련, 초대 조세심판원장으로서 납세자 입장에서 세무행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점이나 조세심판행정 개편에 기여할 수 있게 된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밖에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미국 국세청 감독위원회 등 조세행정에 대한 감시체계, 사회와 행정의 투명성과 조세행정의 관계 등 미국 조세정책·행정을 연구하는 기회를 가진 것도 큰 보람이었습니다.

-조세심판원이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합니다. 조세심판원을 소개해 주시죠.

▲조세심판원은 한마디로 세정분야에서 사법부 기능을 하는 기관입니다. 독립적인 지위에서 준사법적 절차에 따라 세금부과가 위법·부당한 지 여부를 가리는 기관으로 행정심으로서는 납세자에 대한 최종 권리구제기능을 수행하며, 우리나라 국세·지방세 등 세무행정을 리드하고 있죠.

조직 구성은 원장과 20명의 조세심판관이 심판청구사건을 심리하는 데, 이를 보좌하는 조직으로 12개의 조사관실과 행정실을 두고 있습니다.

비상임 조세심판관은 우리나라에서 세법과 법률학, 회계학 등에 가장 권위있는 전공 대학교수나 법률가, 고위공무원 출신 중에서 국무총리가 위촉하도록 돼 있습니다. 지난 해 심판처리 건수는 내국세 4천565건, 관세 162건, 지방세 751건으로 총 5천478건에 이릅니다.

-초대 조세심판원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조세심판 관련 제도의 구축과 행정개혁, 직원의 전문성 향상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심판결정을 하는 기관으로 평가받아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끝으로 고향인 대구·경북지역민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고향을 떠나온지 오래 됐지만 늘 대구·경북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를 비롯한 모든 일이 잘 돼 대구시민·경북도민의 생활이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제가 할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건강하시고 행운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허종구 조세심판원장은

1951년 경북 고령군 개진면에서 태어났다. 개진초등학교, 계성중과 대구고를 거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및 행정학 박사과정(정책학 전공)을 수료했다.

행정고시 21회에 합격해 국세청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 3개 세무서 과장으로 일선세무행정을 경험했다. 재무부 세제국 등에서 10년간의 세제실무경험을 쌓은 후 문민정부 초기에 청와대 경제비서실 조세담당 행정관으로 조세정책 조정업무를 담당했다. 그후 국세청으로 돌아와 이천·반포세무서장, 국세청 본청의 심사2과장, 법무과장, 기획예산담당관을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연구원으로 조세정책학을 연구했다. 이어 중부지방국세청 조사국장 겸 국세공무원교육원장 직무대리, 국세청 개인납세국장을 거쳤으며, 2007년 2월 다시 재경부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으로 복귀한 후 2008년 3월 국무총리 조세심판원의 초대원장으로 임명됐다.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