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결혼해 아기를 낳고 기르는 보통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큰 행복으로 느껴지는 지 모릅니다.”
20년 가깝게 간호사로 일했고 지금은 상담간호사로 일하는 임정희(39·사진) 포항여성병원 책임간호사.
‘백의의 천사, 희생과 봉사의 대명사, 21세기의 나이팅게일….’이라는 간호사에게 가져왔던 이 같은 이미지는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올해로 간호사로 살아온 지 16년째인 그녀는 세상이 변하면서 단순히 ‘의사의 도움녀’로 여겨졌던 간호사는 어느덧 전문 직업인의 능력을 요구받기 이르렀고, 더 많은 의료지식과 전문성을 갖추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미국과 같은 의료 선진국에서는 간호사가 의사만큼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간호사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녀는 올해로 간호사 16년차에 접어들었다. 선린대 간호학과를 졸업해 영천 영남대병원에서 근무하다 지난 1998년부터 포항여성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분만실에서 6년간 일한 뒤 2005년부터 상담실로 옮겨 와 근무 중이다.
“간호사의 일이라면,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고 환자를 돌보는 일 위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환자에 대한 투약과 음식물 섭취, 배설 등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서 병원의 전체적인 관리자 역할도 간호사들이 합니다. 병동 안전관리나 시설관리 등도 맡고 있다. 병원의 주인은 물론 환자이지만, 실제적인 호스트 역할은 간호사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대부분 낙태를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주변의 환경에 의해 내몰린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과도한 자녀 교육비 부담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경험한 여성 상당수가 오랜 기간 육체적 고통과 죄책감 등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임신한 줄 모르고 감기약 등 약물을 복용한 여성들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지요. 기형아 우려 때문에 낙태를 쉽게 권유받습니다. 실제로 기혼여성의 12.6%는 약물 복용 문제로 낙태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나 장래희망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대학입학 지원서를 쓸 때쯤 ‘간호사가 되면 어떨까,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대학 시절 기초의학, 양약, 간호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지만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3학년 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업무영역을 돌며 실습을 했는데, 종합병원이 가장 힘들었지만 재밌었습니다. ‘나는 병원 체질이구나’ 생각이 들었지요. 활동적이고 리더십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들이 간호사 체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힘든 근무환경 때문에 일찌감치 일을 그만두거나 쉬는 동료들이 많지만 힘든 시기를 보내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녀는 환자들이 건강하게 퇴원할 때, 환자들이 간호사를 고맙게 생각할 때 보람을 느낀다. “내가 가면 너무 좋아하는 환자들, 반대로 내가 며칠 쉰다고 하면 섭섭해하는 환자들, 며느리 삼고 싶다는 어르신 등 환자에게 정을 느낄 때 기쁨과 뿌듯함이 생깁니다. 신참 때는 일에 집중해서 잘 느끼지 못했는데 점점 일에 익숙해질수록 환자와 교감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애정도 갖게 됩니다. 또 간호사들은 유대 관계가 유별나기로 유명한데, 이런 동료애 관계에서 얻는 즐거움도 큽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특성상 친절이 ‘무장된’근무환경이나 철저한 위계질서, 실수해선 안 된다는 심리적 강박 등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녀 또한 이런 어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성에 맞고, 열정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그녀는 미혼여성들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산부인과를 자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미혼 여성은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꺼립니다. 불법 낙태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지요. 그래서 미혼여성들은 잘못된 성지식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왜곡된 정보로 몸에 이상이 있어도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궁경부암이나 질염과 같은 자궁질환은 미혼여성에게도 흔합니다.”
저출산율 최고 국가인 오명을 버리기 위해 여성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바람이다.
“저출산이 국가적인 골칫거리로 등장했습니다. 출산율을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 국가가 더욱 매진할 때 인것 같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하는 노력을 보태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정책 방향이 개인의 자발적 선택과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일 때 의미와 효율성을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 작은 여백의 힘은 크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의 차이를 그 여백이 만든다. 그녀에게서 여백을 발견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