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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우 암각화 연구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09-05-29 19:58 게재일 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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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의 보존과 애호는 선진문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숭례문이 불탈 때 여러분이나 저나 한 가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아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없어져 버린 것에 대한 애석한 마음은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있을 때 잘해’하는 것이 이성 친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칠포리 암각화는 상상이상으로 훼손이 심각합니다. 청하면 신흥리에 있는 오줌바위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에게는 포항의 어느 곳 보다도 더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도 산불이후 엄청난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지요. 또한 석리암각화는 어느 누구의, 어떤 사람의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하우(54·사진) 암각화 연구가.


그는 경북지역에서 몇 안되는 암각화 연구가이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한국화가로 활동을 했지만 지난 1982년 칠포리 암각화를 발견·조사하면서 암각화를 연구하게 됐다.


“벌써 20년이나 되었습니다. 처음 암각화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칠포리암각화의 발견이 계기가 된 것입니다. 간혹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림이나 하지’하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기록이기도 한 그림을 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래도 당시의 표현방법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나타낼 수밖에 없는데, 전 그것을 선사시대의 선사인들의 조형성을 분석하고, 거기서 얻어진 결과로서 제 작업의 조형언어를 찾고자 하는 코드로 생각한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보다 잘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저라는 ‘개인’은 그것으로 현대회화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는 암각화연구의 궁극적 목표도 역시 현대회화라고 말한다. 자신의 작업을 보다 잘 알고자 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안동이 고향인 그는 포항에서 27년째 살고 있다.


그동안 세 번의 개인전과 200회 이상의 기획전 등에 참가했다.


“한동안 작품발표에 공백이 있는데요 이런 공백은 저 나름대로의 작업에 대한 고민과 함께, 제가 고고미술사학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동안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만간 다시 열심히 작업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그의 고민은 그가 2000년 초에 발견한 석리암각화를 도난당해 이것을 하루빨리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라는 한 인간이 ‘암각화를 찾고 조사했다’는 흔적이 전혀 남기지 않도록 하여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고 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암각화는 울산의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가 있지만 그 대부분은 칠포리 암각화와 같은 구조를 지닌 검파형이라는 암각화입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대 초반에 발견해서 그간 조사과정에 있던 포항 석리의 암각화를 최근에 잃어버린 일입니다. 이 암각화는 인면형태의 암각화로 동북아시아에서 일상적으로 조사되고 있는 같은 유형의 축에서 생각할 수 있는 유적이기 때문에 좋은 비교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이와 같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훔쳐가고 도난당하고 허무하게 사라져 버려,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후손에게 조차 물려줄 거리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는 한국암각화학회를 1995년 창립멤버로 들어가 올해로 3년째 학술이사로서 칠포리암각화를 비롯한 암각화자료의 조사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첫 암각화학술대회를 포항공대에서 개최하고 12권의 학회지와 24회의 학술대회 가운데 절반 정도를 그가 기획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손을 거쳐 밝혀진 것만 칠포리 암각화를 비롯해 영천 보성리 암각화, 포항 석리 암각화 등 3개가 된다.


그는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소장으로도 7년째 일하고 있다.


무크지 성격의 ‘선사미술’창간호와 두 번의 한국암각화에 대한 정밀조사, 북아시아와 호주에 이르는 암각화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한국선사미술연구소가 조사 자료를 제공해 지난 8일부터 6월7일까지 한 달간 울산암각화전시관에서 개관 1주년 기념전 ‘아시아의 숨져진 진주 알타이 바위그림전’을 열고 있다.


암각화전시관에서 이번 전시회를 하면서 그는 한국식 암각화의 본고장인 포항에 암각화박물관과 같은 것이 만들어졌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봤다고 했다.


그곳에 그가 그간 수집하고 만들었던 연구 성과를 포함한 모든 자료를 내 놓고 싶다고 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세계 각국의 출간자료 약 400여점을 비롯해 사진은 물론, 동영상과 직접 채록한 도면자료를 포함하여 꽤 되는 분량입니다. 이걸 그곳에 놓고 함께 공유하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울산의 전시관이 울산의 암각화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면, 포항에서 세워질 수도 있는 박물관에서는 한국식 암각화는 물론, 인근 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넓은 공간을 연구하게 되는 연구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암각화박물관은 문화재청에서 기획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포항시가 나서서 여기 칠포리에 유치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적이 있는 곳에 박물관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니까요.”


올 여름에는 북아시아의 또 다른 암각화 중요 분포지인 예니세이강변의 암각화조사활동이 예정돼 있다. 이곳은 지난 1999년에 제가 일차적으로 조사한 곳이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 멋지기 때문에 올해 다시 현지 연구자 자이카교수와 합동조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현지물가가 예전과 너무 차이가 있어서 자금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올해 조사의 목적은 우리문화의 내용과 일정부분 관련성을 보이는 샬라볼린스키에 유적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칠포리 암각화 보존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포항의 칠포리 암각화의 경우 다른 곳에 있는 반구대암각화보다 그 중요성이 결코 못하지 않는 우리나라 암각화의 매우 중요한 유적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아무도 모르게 실시된 화학물질 도포와 같은 암각화보존조치는 유적 열화작용과 같은 부분에서 취약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타격과 같은 손상시 매우 엄중한 피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진행된 지의류 세척은 그것이 일정부분 유적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무색하게 바위표면을 말쑥하게 벗겨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위환경의 변조도 심각할 지경이라서 최초 발견자로서 그간 자연적 인위적 변화를 보아온 입장으로 편치 않습니다. 주무 관청의 보다 세심한 보존 의지가 강하게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암각화 연구가로 살아가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저는 좋은 그림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현대회화는 물론이고요, 까마득한 먼 옛날의 것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그것이 바위라는 매체에 새겨진 암각화라면 어디라도 가서 보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간 시베리아, 몽골을 위시한 북아시아의 이름난 암각화유적은 대부분 가 보았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여러 다양한 사람과 연구자들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분들께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요. 같은 것을 연구하는 동지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해 한껏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그간 다녔던 산길 들길에서 만나게 되는 입석이나 사슴돌, 쿠르간에게서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소리를 언뜻 언뜻 듣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암각화라도 만나면 그 날까지의 모든 힘든 일들이 잊혀 지지요. 이러한 일들이 저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기쁨을 여러분과도 함께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바람을 물으니 바로 “어려운 부분”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애호는 선진문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숭례문이 불탈 때 여러분이나 저나 한 가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아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없어져 버린 것에 대한 애석한 마음은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있을 때 잘해’하는 것이 이성 친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칠포리 암각화는 상상이상으로 훼손이 심각합니다. 청하면 신흥리에 있는 오줌바위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에게는 포항의 어느 곳 보다도 더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도 산불이후 엄청난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지요. 또한 석리암각화는 어느 누구의, 어떤 사람의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문화유산의 보존은 그것을 보호하려는 깨인 의식에서 나온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사회여건이나 그 사람의 경제적 환경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먹고 살만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ㅇㅇ산에 등산 가는데 절 집은 보지도 않는데도 입장료 내라고 한다’는 푸념을 들었습니다. 물론 아까운 생각이야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입장료 중 일부는 허투루 사용도 되고 하더라도, 그 중 조금의 액수만이라도 제대로 문화유산의 보호와 보존에 쓰인다면 너무 억울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연기설(緣起說)을 믿고 있다. 그래서 현생의 부단한 노력이 다른 세상에서의 삶의 질을 어느 정도 약속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저대로 충실한 삶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제 주변엔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생활하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을 보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다음에는 더 신나는 일이 있을 지 누가 압니까. 그래서 전 ‘정진(精進)’이라는 말을 참 좋아 합니다.”


그는 암각화연구에서 더 나아가 대륙을 가로지르는 세계여행을 시도하고 있다.


“저만의 조그만 꿈이 있다면 대륙을 한번 가로질러 보는 것입니다. 10인승 정도의 작은 차를 구하고, 거기에 가족이나 좋은 동지들로 팀을 구성해야 하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부터 저 멀리 대륙의 끝 핀란디아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혹시 누가 압니까? 가다가 만나는 아름다움 풍광에라도 빠질 수 있다면 수일간 그림도 그리고, 또 그곳에 제가 공부하는 아름다운 암각화가 있다면 조사도 하고…. 그렇게 한 1년 정도 다니다 보면 얻어지는 것도 있고, 다녀 온 후에는 그 자료를 밑천삼아 미뤄둔 작업도 좀 하고 운이 좋다면 몇 권의 책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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