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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끌어내리기

최재영 기자
등록일 2009-05-14 20:46 게재일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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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영 < 서양화가 >


중학생을 둔 어느 엄마가 요즘 뜨는 조크라며 들려 준 얘기인 즉,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머리가 괜찮은 엄마라면 자식이 공부한다고 책상 앞에 앉을라치면 “맛있는 것 해 놨으니 먹고 빨리 자라” 한단다.


학원을 가겠다면, “공부에 너무 매달리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으니 엄마하고 운동이나 하러 가자”며 꼬드겨, 책상 앞에 앉는 것을 극구 말린다는 것이다.


엄마가 어떡하든지 아이의 공부를 막아서 성적 끌어내리기 작전을 편다는 것.


요즘 세상에 눈이 벌게서 유치원에도 안 간 녀석을 영어니, 뭐니 하며 학원엘 끌고 다니며 성적 올리기에 골몰할 텐데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얘기냐고 하겠지만 이웃의 어느 선배언니의 경우를 실제로 보면서, 반드시 우스개로만 들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더란다.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그 선배언니의 하소연은 가족이 무엇이고, 사람 사는 맛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게 하더라는 것이다.


사연인 즉 하나 있는 아들놈을 위해 죽을 판, 살판 허리 휘도록 돈 벌어 과외 붙이고, 밤을 새워가며 뒷바라지해 서울의 괜찮다는 대학을 보냈단다. 졸업 때가 되자 남들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의 스카우트제의도 마다하고 유학을 가겠다고 하드란다.


유학도 아무나가나 하는 심정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미국엘 보냈더니 이태도 되지 않은 어느 날부터 거기서 만난 유학파 아가씨와 결혼하겠다며 덜덜 볶아대는 전화가 쇄도 하드라는 것.


부모가 죄라고, 마지막 남은 노후대책도 다 털어 결혼식 올려주고, 그곳에서 뿌리박겠다는 자식 놈 집 얻는데 보태주고 나니, 남은 건 고생에 찌든 두 몸뚱어리뿐이더란다.


그리고 아들놈은 그렇게 미국에서 직장 잡아 잘 살더라고 했다. 그러면 됐지 뭐 바랄 것 있겠냐고 했는데, 댕그라니 남은 부모에게 가끔 아쉬운 전화가 고작이고 얼굴 본지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고 했다.


명절이면 이들 부부는 더욱 괴롭다고 한다. 손자들 장난질에 시끌벅적한 이웃을 보면서, 개미새끼 얼씬 않는 집구석에서 쓸쓸하게 보내야 하는 이들 노부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한때는 서울의 유명대학에 합격했다고 게거품을 물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고, 미국유학 보냈다고 동네방네 떠들며 어깨를 들먹였던 그 때가 지금은 왜 그리도 부끄럽게만 여겨지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란다.


그 선배언니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자식이 제 갈 길을 잘 가서 행복하면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냐고 자문해 보지만 그 역시 얼마 있지 않으면 그 처지가 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염려가 들더라고 했다. 옛말에 “눈먼 자식이 효자노릇 한다”고 했다.


똘똘한 자식은 잘 배워서 내로라하는 집안에 시집장가 잘 가서 떵떵거리는 맛에 빠져 부모를 잊은 지 오래고, 배우지 못해 어눌한 자식은 죽으나 사나 부모 곁에서 이것저것 수발 다 들면서 효자노릇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말이 생긴 모양.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가까이 있지 않으면 이웃보다 못한 법. “이웃사촌”이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내 주변에도 저 살길 찾아 멀리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이 의외로 많다. 국내에 살고 있어도 명절이나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면 찾아오기가 어려운데 외국에 나가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이 한 자녀 또는 두 자녀를 넘지 않은 가정들이라 아들이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경우는 거의 홀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친척 중에는 수 년 전에 외국으로 나간 아들이 손자를 낳았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다며 장탄식을 늘어놓는다. 한 번 다녀가라고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곧 오겠다는 말만 들은 것이 몇 년이라고 한다.


내 나라에서도 어려운데 타국에서 뿌리내리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닐 터, 저들 역시 얼마나 오고 싶겠냐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려움이 얼마나 많겠냐며 체념하고 산다고 했다.


타국에서 살면서 홀로 남겨진 부모님 돌아본다는 것은 보통 마음 씀이 아니고선 어려운 일인 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줄 것 다 빼주고 빈 껍데기만 안고 사는 늙은 부모들의 살림살이가 빡빡하기만 해 보인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섭섭함이 더 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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