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조용하던 손전화로 저녁 무렵 편지가 왔네요.
‘혼자 여행 중
정박선에 앉아 키조개에 소주 한 병
구름도 잿빛 바다도 잿빛
왜 중요한 순간에 하늘과 바다는 같은 색일까예
왜 구름과 바다를 보는데 당신 생각날까예’
조곤조곤한 말투가 그대로 들려오는 듯 했어요.
기계 속에 담긴 짧은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며 행복하였지만
답장은 일부러 하지 않았답니다.
호젓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과가 사과나무를 다 떠난 늦가을
상옥 골짜기 당신의 작업실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납니다.
바닷가 사는 저는 횟감과 조개를 들고 가고
골짜기 밤이 제법 춥다며 당신은 아궁이에 불 잔뜩 넣었지요.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앞산 능선이 나뭇가지 총총 세우는 저녁이 오고
개밥바라기 결국은 밤하늘 온통 별들을 불러 모을 때까지
흙내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숯불에 조개 올리며
이슬처럼 달디 단 소주를 우리가 마셨던가요?
‘시간은 내 안에 충분하고 풍경은 나를 이루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흡족하네예’
며칠 걸어야겠다고 훌쩍 넘어 간 제주도에서
쪽빛 바다 벼랑 위에 앉아 있다며 새해 둘째 날 보내 준 엽서도
한국의 영화 시리즈 시집가는 날 우표에 선명한 소인을 찍은 채
늘 제 앞에서 저리 살고 있습니다.
남해 봄쯤을 다녀오자고 언젠가 그대와 나 마음 맞춘 적 있지요.
황토에 풋마늘 솟는 아린 풍경 다 져버리도록
눈앞의 봄들 닦느라 안부 한 번 서로 묻지 못하였네요.
그러나 가다가 만난 가장 고요한 자리에서 잠시 쉴 때마다
꼬박꼬박 보내 준 몇 마디 마음처럼
나서는 저의 길에도 돌아보면 문득 그대가 있는 것을 압니다.
한 도시의 남쪽 북쪽 끝 마을
작정하고 서로 나서면 고작 반시간 남짓인데
당신은 삶을 조각하고 나는 졸편 앞에 무릎 꿇느라
계절 두어 개쯤 흐르도록 마주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지만
주고받는 마음 몇 자로도 긴 세월 가는 벗 있어 좋습니다.
‘이런 하루가 평생 같고 평생이 하루 같은 날들이 이어지길 바래봐예’
엽서 속 글귀가 그대 참 보고 싶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