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던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 제22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사, 2007)
문학사상사에서 주관하는 2008년 제22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은 나희덕 시인의 ‘섶섬이 보이는 방-이중섭의 방에 와서’이다. 나희덕 시인이 제주도 여행 중 서귀포에 있는 화가 이중섭이 살던 고방, 다시 말해 “섶섬이 보이는 방”에 머물면서 얻은 생각을 시화(詩化)한 것이 소월시문학상 대상작인‘섶섬이 보이는 방-이중섭의 방에 와서’이다. 일본 유학시절 턱(아고)이 긴 이(李)씨라 하여 ‘아고리’로 불려진 이중섭이 제주도 바닷가에서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이남덕)와 두 아들 태현(야스가타), 태성(야스나리) 과 함께 한 행복했던 삶, 그리고 이중섭의 작품으로 시상은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평화로운 삶의 풍경 이후 시의 종결부에 불우했던 중섭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마음을 담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라는 시행을 얹음으로써 큰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