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 한 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B.A.N.K가 은행 맞지요? 네 맞습니다. 왜요? 30년 동안 다니던 길에 영어 단어가 하나 있는데,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근데 이 단어가 얼마 전에 배운 것이네요. ‘히히’. 순간 교사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25일 저녁 7시50분.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대구혜인학교(비영리 민간단체). 흔히 야학이라고 부른다. 입구에 들어서니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루어낸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계단 옆에는 예쁘게 꾸며놓은 꽃도 보였다.
이곳은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총 3개의 교실이 있다.
한 곳은 교무실로 교사들이 사용한다. 교무실이라고 하지만, 잡동사니가 많다. 학생들의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어지럽게 놓인 교재가 학생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 두 곳은 중·고등부가 수업을 하는 매화반과 국화반.
개교(1981년) 당시만 해도 매화, 난초, 국화, 청죽반 등 총 4반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 수는 감소, 2001년부터 2반이 됐다.
10년 전만 해도 학생 수는 160명이나 됐는데, 현재는 겨우 20명.
하지만, 배움의 열기는 그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17살부터 73살까지 다양하지만, 이들 모두 독특한 사연이 있다.
한 학생은 어린 시절 자신은 논밭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모습이 부러웠던 것. 또 다른 학생은 어려운 환경으로 배움의 시기를 놓쳐, 노년에도 학구열을 불태우고 싶었던 것.
이렇게 다양한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발산하고 있지만, 지역 야학은 지자체의 주먹구구식 예산 지원과 후원인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고용불안과 취업난으로 교사 구하기도 힘들다.
현재 이곳은 지자체 등 정부기관에서 성인문예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일 년에 1천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는다.
그러나 지급 시기가 현실에 맞지 않아, 운영에 애로점이 많다.
또 지난해만 해도 후원인이 20여 명이 넘었지만, 올해는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월세 30만원과 기타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비까지 털어, 수업에 임하고 있다.
권기범 교감은 “야학은 단지 지식을 전달해, 합격을 일 거 내는 학원의 시스템이 아니라 지난 추억과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안식처다”며 “학생이 많이 줄어든 것은 한편으로 한국이 살 만 한 국가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아직도 야학을 모르는 이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그는 “야학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 등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승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