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적으로 말하면, 펜실베니아 대학의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학습된 무기력’과 ‘학습된 낙천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학자로 유명하다.
낙천적인 사람, 즉 긍정적인 사람은 비록 실패 했다하더라도 실패가 바꾸어야 할 어떤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해 다음 번 시도에는 그러한 요인을 바꿈으로써 성공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비관적인 사람, 즉 부정적인사람은 실패란 나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떤 지속적인 결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해 실패 그 자체를 비난하고 스스로 포기한다. 이러한 성격적 차이는, 어떤 문제나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데 실로 엄청난 차이를 야기하게 된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참으로 중요하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실패는 반드시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과 충고를 받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는 등 활동적으로 반응해 희망적인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실패를 개선할 어떤 방법도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언제나 실패를 하는 인간으로 간주하고 그냥 포기하여 버린다.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기국무사우천경(杞國無事憂天傾)’이라는 구절을 생각해 보자. 이 말은 원래 열자(列子)의 천서편에 나오는 말인데, 이백이 인용한 것이다.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 살았다. 그는 만약 하늘이 무너지면 몸을 지탱할 곳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걱정에 잠 못이루는 것을 걱정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이 두 번째 걱정남이 첫 번째 걱정남을 찾아가 말했다.
“하늘에는 공기가 쌓여 있을 뿐이네. 공기가 무너질 리도 없고, 설사 무너진다해도 다칠 이유가 없네. 우리는 이미 공기 가운데서 움직이며 숨쉬고 있지 않은가. 왜 괜한 걱정을 하나 ?” “하늘이 공기로만 채워져 있다면, 해나 달이나 별이 덜어져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들도 역시 공기 가운데서 빛날 뿐이네. 설령 떨어진다 머리 통을 때리지는 않을 걸세.“
“그래도 땅이 꺼질 수 있지 않은가?”
“땅은 흙이 쌓여 이루어진 것일세. 사방에 꽉 차있는 흙이 어디로 꺼지겠는가? 저 수많은 사람과 무거운 집, 태산까지도 받쳐주는 대지가 아닌가? 괜한 걱정일랑 말게.“
고사성어가 기우(杞憂)라는 말이있다. ‘기 나라 사람의 걱정’ 다시 말해 쓸데 없는 걱정을 두고 하는 말이 된 것이다.
차이라면, 열자는 둘 다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았지만 로맨티스트인 이백은 옛사람의 순진한 걱정을 긍정적이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시화(詩化) 했다는 점이다. 이백이 열자보다 더 긍정적 사고를 가진 셈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우리 속담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이건 기나라 걱정남은 물론, 열자나 이백보다 여러 수 앞서는 긍정적 사고이다. 중국에서 하늘이 무너진다. 안 무너진다.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 우리 선조들은 “무너지려면 무너져라. 설마 저 넓은 하늘에 솟아날 구멍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 온 것이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든 어느 쪽을 택할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걱정이 반찬이면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사실이다. 불교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는 말이 있다. “생각은 그것을 그렇게 만든다”라는 뜻이다. 부정적 감정은 부정적 사고를 낳고, 부정적 사고는 부정적 행동을 낳고, 부정적 행동은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긍정적 감정은 긍적적 사고를 낳고 긍정적 사고는 긍정적 행동을 낳고 긍정적 행동은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