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90년대 아시아의 세 마리 용으로 지칭되던 한국과 홍콩, 대만의 자리를 이제는 중국, 인도, 베트남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 세 나라 가운데 비교적 산업개발에 늦게 뛰어든 베트남은 20세기 말 최대의 전쟁터였지만 거대한 강대국과 싸워, 결국 민족을 하나로 묶는 통일을 일궜다.
그 후 뼈아픈 전쟁의 후유증을 겪었지만 그들은 특유의 끈질긴 민족성을 바탕으로 재기의 힘찬 걸음마를 하고 있다.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들린 하노이나 구 사이공인 호치민시는 중국의 상해나 베이징 못지않게 발전의 속도가 드러나 보인다. 머지않아 세계 최고의 활력이 넘쳐나는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데 베트남을 여행해본 나로서도 도시의 길거리나 골목마다 웃통을 벗은 채로 하릴없이 잡담에 빠져있는 듯 나태해 보이는 수많은 베트남 남자들의 지쳐 보이는 모습에서 도대체 이 나라의 어디에서 저런 개발의 저력이 나타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베트남의 도시들과 농촌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가운데서 나는 그 해답을 어렴풋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베트남의 여성파워였던 것이다.
베트남 어디를 가도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거의가 여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다.
우리나라 같았다면 의당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야 할 힘든 자리에도 여성들 천지다. 그러니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뒷전에서 어슬렁거리는 방관자로 보인다.
오랜 전쟁 끝에 씨가 말랐다 할 정도로 남자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던 영향이 오히려 남자들을 보호하는 정서로 변질된 탓인지는 모르지만 베트남의 남녀역할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없잖아 보인다.
육아와 가사를 남자가 전담하던 옛날 제주도의 풍습을 이해한다면 그들을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의 베트남을 있게 한 영웅 호치민은 평소 “여성과 노인을 부모처럼 대하라” 했다. 물론 전쟁의 참화를 건설할 일꾼은 남은 노인들과 여성들뿐이었겠지만 어쨌든 베트남 여성들의 자존심은 매우 높다.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이 봉급이나 식당, 작업환경 등에서 여성을 무시하고 차별했다가는 문을 닫아야 한다.
작년엔 베트남의 한 일간지가 그들 여성들의 자존심을 해치고 있는 한국인들의 실태를 기사로 실었는데, 이것이 심각한 ‘외교적 문제’로 번졌다.
한국 남자들을 앉혀놓고 베트남 여성들이 줄을 서서 ‘노예시장에서 노예 고르듯’ 여자를 고르는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신문에 실었고, “한국 왕자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란 사진설명까지 달았던 것이다.
소위 국제결혼의 실태를 취재한 내용이었는데, 베트남 여성들은 ‘돈 때문에’ 한국 남성과 결혼하려 한다는 내용의 기사도 덧붙였다. 이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 베트남 정부 여성연합회가 벌 떼같이 일어나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장가 못 가는 한국의 총각들을 이용하여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을 노예 사오듯, 베트남처녀들과의 국제결혼이라는 천민적 작태를 보인 것이 결국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베트남독립투쟁의 역사를 보노라면 우리가 그렇게 무시하고 업신여길 나라가 결코 아니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위대한 민족혼으로 똘똘 뭉친 끈기와 자존심의 나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의 민족적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 나선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술을 우리 스스로가 개탄하고 바로 잡아 나가야 할 때다.
내 이웃에도 한국에 시집 온 젊고 참한 베트남아줌마가 있다. 가냘프지만 예쁜 심성이 얼굴에 환히 묻어나는 한 아이의 엄마다. 생활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 가냘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물론 신랑도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베트남에 남아있는 어려운 친정식구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아줌마를 볼 때마다 70년, 80년대 우리들의 누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식구들을 위해서, 대처에서 공부하는 오빠들의 학비를 위해서, 공장에서 뼈아픈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열심히 살아보리라는 모습에서, 예쁜 딸을 아름답게 키워보려고 애를 쓰는 베트남 아줌마를 보면서 바로 베트남 여인들의 파워를 확인하는 것 같다.
어떤 이유로 왔건 이들도 이제는 분명 우리의 이웃이자 국민이다. 어려울 땐 도와주고 감싸 안아주는 성숙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