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나 선배 되시는 분이 “우울할 때면 시장을 가보라”라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일주일에 몇 번이고 시장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딱히 뭘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아! 이것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고 느낀단다. 의욕의 충전을 시장에서 한다고 했다. 이분의 얘기를 듣고, 어느 날 부터인가 나도 우리 지역의 가장 크다고 하는 죽도시장을 들러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길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 통에서 “맞아! 이게 바로 사람 사는 꼴이야.” 죽도시장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보면 물건을 흥정하느라 시끌시끌한 풍경을 즐기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내 주변에는 최고급을 파는 대형백화점도 있고, 한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보면서 쇼핑의 즐거움을 한껏 맛 볼 수 있는 대형마트들도 적지 않지만 민초들의 생명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갈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맛본다.
화려한 진열에 현란한 몸짓은 없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구매욕을 돋우지는 않아도 풋풋한 풀냄새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늘 정감이 간다.
시장은 서민들의 애환과 사랑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나라의 형편이 가장 적나라하게 보이는 곳이 시장이어서 정치에 입문하려는 인사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도 시장이다. 자세를 팍 낮추어 서민들과 함께, 서민들을 위해서 정치를 잘하겠다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비추게 하기위한 전략으로는 시장만큼 효과적인 곳도 없기 때문이다.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조그만 관심으로 살펴보아도 웃음이 절로 나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은 물건인데도 큰 통로에 있는 가게와 약간 후미진 샛길에 있는 가게와는 30% 정도나 값 차이가 나는 것은 예사고, 바로 옆 가게와도 차이가 난다. 엿장수 마음대로 말처럼 정해진 가격이 없고 들쑥날쑥 이다.
백화점이나 마트처럼 정액제가 아니라서 가격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물건을 앞에 두고 옥신각신하는 실랑이를 자주 본다. 깎아달라고 애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밑지고 판다고 너스레를 뜨는 장사꾼들의 연기가 살아 숨 쉰다. 백화점, 마트같이 믿음은 적지만 무지하게 깎았다고 즐거워하며 자기체면에 빠지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도 시장이다.
무, 배추, 시금치 등 농산물 좌판을 펼쳐놓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아저씨! 떨이요 떨이 요것마저 팔면 집에 가려는데 떨이해 줘” 하며 고단해서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할머니의 연기가 일품이다.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강심장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한 바퀴 돌아오면 예의 그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또 “떨이요!”하고 지나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떨이”에 속은 줄 알면서도 그것이 그렇게 밉지 않은 것도 바로 재래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취다.
내가 시장을 갈 때마다 들리는 과자점이 있다. 고급스런 양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아주 간단하면서 종류가 수없이 많은 밀가루 과자를 자기 입맛에 따라 비닐봉지에 이것저것 마구 퍼 담아 무게로 다려서 파는 곳인데 주인아저씨의 재미있는 입담을 함께 담아주는 곳이라서 그 재미로 찾는다. “배속에는 5천 원, 봉지엔 천원”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먹으라고 목청을 돋운다. 거기다가 계산을 치르고 나도 이것저것 맛보라고 덤으로 얹어주는 것이 오히려 돈을 낸 것보다 더 많아 보인다. 저래도 남는 게 있나 할 정도다.
디자인이며, 색상 등 백화점에서 명품이라고 수십만 원의 가격표가 붙은 것과 똑같은 물건들을 그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다. 물론 가짜다. 멋쟁이를 꿈꾸는 서민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곳도 바로 이 재래시장의 매력이다.
잡다한 물건 바구니를 휠체어 앞에 달고 애원의 눈길을 보내는 장애인을 몰라라 하고 그냥 보내지 않는 곳도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어려운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말처럼 동병상련의 동정이 통하는 곳도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속았다고 느껴도 분하지 않고, ‘사려면 사고 말테면 말아라’ 며 퉁명스러워도 무시당했다고 기분 나쁘지 않고, 때로는 황당함에 웃음이 나고, 구석구석 사람 사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 진정으로 시장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오늘도 힘들고 괴로워하며,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시장에 가 보라고. 넉넉한 삶이 묻어나는 곳, 바로 사람의 진솔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