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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내면 잡힐 듯 에베레스트가 눈앞에…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6-12-12 20:03 게재일 200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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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에서 탱보체로 가는 도중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새벽 5시40분께 잠에서 깨어 복도 입구 세면대로 가니 덩치 콘 서양인이 칫솔질을 하며 웃는다. 나도 따라하며 싱긋 웃었다. 사람사는게 다를게 없나보다.


고소에서는 씻는 것조차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샤워는 할 수 있지만 이 롯지에서는 유료다. 고소증에 걸릴 수 있다는 설명에 다들 샤워는 엄두도 못낸다. 겨우 고양이 세수 하듯 물을 찍어 바르는 수준의 세수만 한다. 머리도 감아서는 안된다.


체온을 빼앗기면 그 만큼 산소가 더 필요하고 고산에서 산소희박은 바로 고소증세로 이어지기 때문에 산속 생활내내 샤워는 커녕 머리조차 감을 수 없다.


고소증세의 일반적인 초기현상은 두통과 어지러움, 두근거림, 식욕부진, 구토, 불면,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고산병은 줄어든 산소량에 몸이 익숙해지지 않아 몸에 이상이 오고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는 증상을 말한다. 고산병에는 특효약이 없다. 무조건 쉬고 아니면 하산하는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고산지대에서 보행속도를 천천히 하는 것이 철칙이다. 체온을 빼앗기는 것 또한 고소증세로 이어지기 때문에 샤워나 머리 감는 것도 삼가야 한다.


고소증세는 누구나 올 수 있다. 체력이 아무리 좋아도 고소증세를 피할 수 없다. 우리 일행들은 그나마 다행인게 일행 중 의사가 두 명이나 있어 미리 사전예방을 많이 받았다.


이재백 원장이 친절하게도 고소적응에 좋다는 약(다이아목스)을 나눠주고 이경수 박사도 좋은 처방법을 일러준 덕에 컨디션 조절에는 무리가 없었다.


새벽 햇살을 받아 황금빛깔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난 꽁데봉 자태가 드러나면서 남체바자르의 아침이 밝았다.


7시30분 다이닝에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댄다. 어젯밤에 본 서양인과 일본인들도 눈에 띈다. 다들 오늘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날 채비를 한다.


고등어를 넣은 묵은지 김치찌개가 오늘의 주메뉴다. 김용운 명예회장이 서울서 곱게 구워온 김이 맛을 더욱 부추긴다. 아침식사 후 숭늉을 먹고 있는데 웬 한국인이 원정대 책임자를 찾는다.


사연을 듣고 보니 급한 일이었다. 서울서 트레킹을 왔는데 부인이 고산병으로 꼼짝을 못 한다고 했다. 다른 일행들은 더 높은 곳으로 떠나고 부부인 두 사람만 5천m 고지대에서 나흘을 내려왔는데 루클라(경비행기가 있는 곳)까지 가려니 포터를 구할 수가 없어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온 것이다.


강석호 회장이 큰 걱정을 하며 이경수, 이재백 원장에게 자문을 구한다. 두 분 원장이 일단 환자상태를 보자며 다른 롯지에 있는 환자를 보러 갔다. 한참 후에 와서 고산병 최후 처치방법인 백사메타존을 주사하고 남은 주사제를 주고 왔으니 회복될 거라고 했다. 산악영화에서나 보는 장면 같았다.


고산병으로 폐에 물이 차고 부종이 생겨 꼼짝없이 죽게 됐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맞는 극한처방이다. 어쨌든 회복돼 생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고소적응을 위해 남체바자르 인근에서 쉬기로 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두어시간 내에 있는 옆 마을‘타무’에 가기로 했다. 임자체등반팀은 장비점검과 고소적응훈련을 따로 하기로 하고 트레킹 팀만 갔다.


티벳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 가는 곳마다 티벳불교 경전이 새겨진 암반과 돌판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티벳불교 승려복을 입고, 남체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돌아가는 승려들이 주절주절거리며 지나간다. 쉴 때는 우리와 사진도 함께 찍으며 밝은 얼굴로 웃음 짓는다.


좌우 양편 거대한 산군들과 멀리 티벳쪽 설산이 잣나무와 짙은 사철송 숲 사이로 평화로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며 우리를 반긴다. ‘웅웅’대는 야크의 방울소리와 함께 세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가 오묘한 화음으로 되돌아 온다. 산허리를 휘적휘적 돌아돌아 저만치 ‘타무’마을이 보인다.


마을 어귀에 조그마한 학교가 있다. 어린애들이 학교 앞 뜰에 모여 기념촬영이라도 하는 듯 늘어선 모습을 보고 선뜻 올라가 카메라를 갖다댔다. 하얗게 웃는 얼굴들이 정말 아름답다. 서양여인이 애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렇게 까마득한 오지에 학교가 있다는 것도 놀랄일이지만 외국인이 들어와 아이들에게 문구 등을 나눠주는 모습은 너무나 가슴 찡한 장면이다.


세계는 역시 하나인 것이다. 오지에 사는 사람도 세계인이요, 파리 에펠탑 밑으로 활보하는 사람도 세계인이다.


교실 두 칸에 불교경전을 써서 붙여 놓은게 눈에 띈다.


학교를 구경하고‘타무’의 마야롯지(maya Lodge)에서 점심을 먹는데 수제비가 나왔다.‘알루(감자)’를 곁들인 수제비맛이 이채롭다. 조금 짭긴해도 먹을만 했다. 중식의 쿡은 No.2‘학빠’가 주도했다. 담장밑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히말라야 산중 오수를 즐기니 천국이 따로 없다. 푸른 하늘에 무심한 흰구름 몇 조각이 흘깃거리며 지나간다.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소리, 산소리, 두런거리는 사람소리뿐 세상은 조용하기만 하다.


따사로운 햇살과 높은 하얀산과 푸르디 푸른 하늘과 일렁이는 바람, 아무것도 거칠게 없다. 자연과 인간만이 존재하는 지구의 끝자락에서 나른한 행복감에 도취된다.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 들러 대한민국 경북산악연맹 강석호 회장명의로 금일봉을 전하며 합장하고 나왔다. 기분이 상쾌하다. 지구의 끝, 오지에도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이곳에 우리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 티벳쪽에서 내려오는 빙하의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구니 시원하기보다‘써운하다’는 사투리가 어울릴 정도로 물이 차갑다. 피로가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다. 3천500m 고지에서의 발마사지였다.


오후 4시가 돼서야 남체바자르로 돌아왔다. 다이닝에 들어서니 아침에 들렀던 서울사람이 부인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사제를 맞고 기력을 많이 회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아직 회복이 덜 됐지만 무사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주사제가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이인 이사의 주선으로 현지인들에게 사정해 이들 부부를 루클라까지 운송해 줄 포터 두 사람도 확보해 주었다.


곧바로 남체바자르 상가에 내려가 털모자와 기념품 몇 점을 샀다. 일행들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기념품을 고른다. 상가 여기저기서 호객도 곧잘 한다. 몇 마디 일본말이 튀어나온다. “아니야 우리 한국인이야”라고 눈을 부라리면 크게 웃으며 우리말도 몇 마디 한다. 순수함이 배어나는 상술이다. 안 사도 그만이라 떼를 쓰지 않아 좋다. 흥정은 세상 어디에도 있는법,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계산기에다 루피액수를 찍어서 보여주면 우리가 디시 찍어주고 또 깎는다. 이렇게 국제 교역의 흥정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 상가에는 등산용품들이 많이 진열돼 있는데 세계 유명 메이커 의류가 다 있다. 모두 짝퉁이다. 하지만 여기선 진품, 모조품을 가리지 않는다. 그저 있는 상품을 값이 맞으면 사고 판다.


슬리퍼 질질 끌며 몇십㎏ 짐을 등짝에 메고 머리띠로 들어 올려 수송하는 포터들도‘노스페이스’상의를 입고, 키친보이도 ‘월드웨어’ 복장을 하고 있다.


쿡대장‘나왕’이 특별히 좋은 육질의 고기를 장만해 수육도 나왔다. 고산지대에만 있다는 ‘마운트 에베레스트’ 위스키가 나오고 에베레스트 맥주도 나온다. 이날은 롯지의 사장이 우리일행의 특별한 행사를 위해 다이닝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흔쾌히‘OK’다.


주사제 효력으로 모처럼 생기가 돈 서울부부도 함께 했다. 자기들이 갖고 있던 마가목술을 한 병 내어 놓았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며 우리들도 내 일인양 기뻐했다. 셀파, 쿡, 키친보이 등의 흥겨운 노래와 멘트가 이어지며 다이닝내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야크불고기 쟁반이 돌아갔다. 다들 맛있게 먹고 마신다.‘남체바자르’3천460m, 히말라야 세르파 본거지에서의 흥겹고 즐거운 밤이 활활타는 난로의 장작처럼 달아올랐다. ‘파상’도 ‘땀젠’도, ‘나왕’, ‘학빠’, ‘옹추’, 철수도 신이 났다. 이 밤이 지나면 우린 또다시 고도를 높이며 딴 세상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남체’의 마지막 밤을 즐기며 밤은 깊어지고 하나 둘 잠자리로 돌아갔다.


여느 때 모양으로 날씨는 화창하다.


오전 8시30분, ‘남체바자르’의 히말리안 롯지를 떠났다. 남체의 가장 높은 고갯마루에 올라 ‘남체바자르’와 작별했다. 고갯마루 옆에 있는 군부대에서 군인들이 소리지르며 훈련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 높은 곳에 군대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이틀 전 팍딩의‘마오’에게 통행세 노략질 당한 걸 생각하면 이곳에 있는 군대는 뭘하는 걸까 하고 의아해진다.


아마다블람(6천856m)이 북동쪽 끄트머리에 하얀 목을 내놓는다. 쿰부 히말라야산군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이름의 ‘아마다블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먼 곳에서 에베레스트도 보이기 시작한다.


한고비 돌아 오르니 전망대 같은 곳에 닿았다. 여기서는 에베레스트가 확연히 잡힌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최고봉, 세계 3대극점의 하나인 에베레스트가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햐얀설산 연봉중 우뚝 솟은 8천848m의 에베레스트를 보려고 기를 쓰고 여기까지 왔다. 카메라 움직이는 소리가 소음처럼 들린다.


에베레스트 오른쪽으로 ‘로체’, 그 옆으로 ‘로체샬’, 건너 ‘아마다블람’, 앞에 앉은 ‘눕체’, 이름만 들어도 섬뜩섬뜩한 고봉들이다. 단체촬영도 하고 우리 부부가 어깨를 맞대며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한다. 남는 게 사진뿐이란다. 그러나 너무 멀다. 좀 더 가까이 가면 더 잘 보일텐데. 하지만, 이게 왠 떡이냐, 에베레스트의 말짱한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데 우린 복도 많다. 거리를 더 좁히기 위해 부지런히 나아갔다.


오늘은 3천250m ‘풍키텡가’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3천860m ‘텡보체’까지 고도를 높이는 힘든 산행이다.


오른쪽 높은 봉우리를 ‘파상’이 ‘떠부치’봉이라고 일러주면서 아직도 아무도 오르지 못한 고난도의 미답봉이란다.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 쓴 채로 칼날같은 봉우리를 단단히 박고 있는 험준한 산을 옆으로 끼고 가면서 또 한 번 설레임을 맛본다.


산은 역시 좋은 곳이다. 산으로 나서면 왠지 기분이 좋은 것은 나만의 감상일까, 아니면 산 중독증에 걸린 걸까, 아무튼 좋은건 좋다. 11시가 돼서야 ‘사나사’에 도착했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힐라리학교가 있는‘쿰중’으로 가고, 에베레스트BC로 가는 ‘고쿄’쪽 길이 있고 우리가 가려는‘텡보체’로 빠지는 삼거리가 있다. 조그마한 롯지도 있고 토산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도중에 만난 현지인들에게 어제 아마다블람에서 등산사고가 나서 8명이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셀파 3명과 외국인 5명이라는데 국적은 모르겠다고 했다. 얼마 전 경북연맹 산하단체인 경주설우산악회 아마다블람 원정대 생각이 났다. 지금쯤‘서미트(정상정복)’하고 내려올 때가 됐는데 어쩌면 캐러번 도중에 만날거라 예상했는데,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 같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됐지만 긴가민가하며‘풍키텡가’까지 갔다.


이곳‘탐세르쿠 레스토랑’에서 냉면과‘알루(감자)’가 섞인 온냉면을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낯익은 산꾼들이 내려온다.


경주 설우산악회 아마다블람원정대였다. 정말 반가웠다. 조금전 사고소식을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다섯명 대원중 네명 뿐이었다. 한명은 일찌감치 고산증세로 장염을 앓아 카트만두로 철수시키고 네명이 정상정복을 하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원정대중 홍일점 여자대원이 뒤늦게 내려왔다. 동상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어쨌든 반갑고 무사해서 다행이었는데 정상정복을 했다니 더욱 좋았다. 어제 일어난 사고는 눈사태로 8명이 사망했는데 독일인들과 셀파들이라고 했다. 고산에서 눈사태는 인간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나 보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원정대를 귀국한 후 보기로 하고 그냥 내려 보냈다.


조금 올라가니 팍딩과 남체에서 늘 오른쪽 설산을 차지하고 있던 ‘탐세르쿠봉(6천608m)’과 그 봉우리에 가려 숨겨져 잇던‘캉쳉카봉(6천685m)’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서서히 고도를 올리니 다들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파상’이 자꾸 뒤돌아보며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는데 일행들 모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경수 박사는 곧잘 간다. 고령인데도 정말 대단하다. 3시간 반을 올라 오후 4시 반 ‘텡보체’에 도착했다. 현지 고도가 3천860m, 지금까지 가장 높은 곳에 왔다. 어질어질한 것 같았다. 기온도 더 내려가 차가웠다.


‘텡보체’ 높은 곳에 커다란 티벳 불교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네팔어로 ‘곰파’라 불리는 불교사원이 자리한 곳이‘텡보체’마을의 한 중심이며 가장 높은 자리였다.


이곳에서는 에베레스트가 더욱 가깝게 보였다.


두어곳 있는 롯지 중 큰 곳에 자리를 잡고 숙소를 배정받았다. 새로 지은 별채로 창밖으로 에베레스트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고도를 높이기위해 땀을 흘리며 올랐는데 제대로 보온처리를 못한 채 덧옷만 입고 있으니 한기가 들며 머리가 아팠다. 침낭을 풀어 침대에 피우고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고소증세가 틀림없었다. 집사람은 괜찮은 것 같았다. 씻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한참을 누워서 끙끙대다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다이닝으로 나가니 모두들 나와 히말라야 고산 특주인‘럼’주를 맛보며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묻길래 이런저런 증세를 말하고 가지고 간 두통약(마이드린)을 한 알 먹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뜨거운 물만 마셨다. 그대로 자면 더 좋지 않을 것 같아 다이닝에서 억지로 버티니 두통이 없어지면서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젖은 내의를 금방 갈아입고 덧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체온을 뺏긴 탓이었다. 다이닝에서는 임자체등반팀과 헤어짐이 아쉬워 일행들 모두 상기된 모습들이었다. 등반팀은 내일 ‘추쿵’으로 떠나고 우리는 다시 내려와‘쿰중’으로 가기 때문이다.


아쉽고 섭섭함을 뒤로 한 채 별빛 쏟아지는 밤을 잠시 거닐고 트레킹중 최악의 컨디션으로 침낭속에서 잠을 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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