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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빈로에서- 원이 엄마의 편지

등록일 2006-06-07 17:40 게재일 200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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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형·편집부국장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사랑할까요 …'



‘원이 아버지에게’란 제목의 ‘원이 엄마의 편지’는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내 고성 이씨 문중의 무덤을 옮기던 중 이응태(1556∼1586)의 무덤에서 부인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짠 미투리, 2구의 미라와 함께 발견됐다.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 엄마는 남편의 병환이 날로 나빠지자 자기 머리카락과 삼줄기로 미투리(신발)를 삼는 등 정성을 다해 쾌유를 빌었지만 남편이 끝내 어린 아들(원이)과 유복자를 남기고 31살의 나이에 숨지자 안타까운 마음을 편지글로 써서 관 속에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지 말미에는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루날 아내가’라고 쓰여 있어 이날이 남편의 장례날인가 보다.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불리는 이 편지의 애절한 思夫曲이 무용작품으로 만들어져 8일 저녁 안동시민회관에서 '450년 만의 외출'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른다.


현대무용가인 안동대 정숙희 교수가 이끄는 ‘정숙희 무용단’이 맡는 이 연극의 1장에서는 98년 무덤 발굴 당시를 배경으로 신비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연출되며 2장에서는 무덤 속 주인공과 그 아내가 살던 시절의 안동지역 장터 모습 등이, 3장에서는 두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4장에서는 남편의 죽음을 예감한 원이 엄마가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는모습이 무용으로 승화된다.



「당신은 한갓 그곳에서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420년 전인 1586년, 31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는 애절한 아내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서 안동지역은 물론,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손색이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미 ‘원이 엄마의 편지’가 이번 현대무용으로 무대에 올려지기 이전에 국악가요와 소설, 연극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원이엄마의 조형물이 설치됐으며 또 앞으로는 창작오페라, 애니메이션, 가요 등도 선보일 것으로 계획돼 있는 것은 이 편지내용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세대들에게 단순한 부부간의 애절한 사연을 뛰어넘어 던져 주는 교훈 또한 만만찮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으며 남편의, 한 가장의 건강을 기원했던 원이엄마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현대사회의 가치기준이 물질 중심으로만 치달으면서 부부간의 정은 물론, 가족간의 사랑도 메말라가고 있는 우리들의 부끄런 자화상이 한없이 안타깝고 서럽기만 하다.



특별히 이 편지는 요절한 자신의 남편만을 그리는 지고지순한 열녀의 모습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원이와 유복자를 두고 홀연히 세상을 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 사랑의 샘물로 승화됨으로써 비록 ‘三從之道’란 그 시대적 상황이란 특성을 넘어 타인은 물론, 부부간, 가족에 이르기까지 온갖 투기와 질시가 판을 치고 그래서 이혼이 난무하고 가정이 파탄지경인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에 교훈의 채찍과 지표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에 이토록 가슴을 저미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창형·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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